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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가고 싶습니다.

단순히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싶습니다.

그럼 전 화성에 생명이 살 수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되겠죠.

그리고 우리 인류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증거도요.」

 

 영중은 모니터 앞에 턱을 괴고 앉아 흥미라고는 조금도 없는 얼굴로 벌써 몇 번이나 보아 이제는 외울 지경의 오래된 영상을 틀어둔 채였다.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고 있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해선 안 될 자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용량 또한 무한합니다. 바로’

“바로”

‘용기입니다.’

“용기입니다.”

 

 영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 속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용기의 상징이자 비범한 소년은 자라나 화성 이주를 꿈꾼 제네시스 스페이스 테크놀러지사의 회장이 되었다고 했다. 바로 지금 영중이 살아가고 있는 [ 이스트 텍사스 ]의 주인이었다. 

 

 영중은 6명의 수석 우주 선원을 자랑하는 장면 위로 스페이스 바를 두드려 영상을 멈추고 발을 굴러 의자를 밀어내었다. 네 시작은 창대하였지만, 그 끝은 미약하리라. 지구인들의 가방에서 흔히 나오는 성경의 한 구절을 비틀어 읊조린 영중이 그대로 몸을 일으켜 침대 위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정착민? 이주민? 지구를 떠나 또 하나의 행성을 찾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허황된 꿈이었다. 이스트 텍사스는 그 이름답게 넓은 광야도, 황량한 사막, 거대한 화산, 심지어 재난인 허리케인까지도 존재 했지만, 인간들의 살아갈 곳은 아주 손톱만큼만 허락했다.

 

 커다란 돔 형태의 센터 몇 개가 인간들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의 전부였고 그 안에 사는 사람이라고는 연구에 미친 과학자들과, 물자 보급을 위해 넘어오는 우주 선원들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4년 주기로 지구로 돌아가는 임시 출장 비지니스맨들, 뭐 그런 것. 그마저도 스페이스 슈트와 헬멧, 공기 생성기를 챙겨 입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처지들이었다.

 

 그런 지구인들 사이에서 영중은 특별한 존재였다. 마젤라-61호의 수석 선원이 낳은 가드너 이후로 두 번째 화성인이 바로 영중이었기에.

 

 여기서 잠시 가드너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는 가장 우주인다운 우주인이자, 평생을 화성에서 살았던 존재였다. 가드너의 모체였던 사라 엘리엇은 우주 한가운데에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았고 덕분에 지구에서 화성으로 오는 과정 내내 무중력 상태에 노출되다, 사라가 화성에 도착하자마자 낳은 탓에 온전히 화성에 적합한 인체로 자라난 탓이었다. 

 

 화성을 꿈꾼 지구인이 낳은 아이는 자라나 지구를 꿈꾸는 화성인이 되었다. 그는 거침없었고 덕분에 그의 생애 한 조각에는 지구가 존재했다. 화성으로 돌아온 그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지구도 좋았지만 역시 집이 제일 좋은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지금도 사라 엘리엇의 묘석 옆에 나란히 선 그의 묘석에 ‘집이 최고’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유언치고는 제법 우스운 문장이었다. 

 

 영중은 아주 가끔 버기를 타고 나가 그와 그의 어머니 묘석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돌아오고는 했다. 언젠가 자신의 비석에는 무어라 새길지 고민하기도 하고, 구전과 영상 기록 등으로 전해져 온 그들의 생을 더듬어 가면서. 몇 해가 지났을 때쯤 영중은 자신의 묘석에 새길 말을 결정했다.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

 

 지구인의 형태를 하고 지구인의 몸을 빌려 태어나 화성에서 나고 자라 오래 불행하고 아주 잠시 행복했던 그의 이야기는 그와 똑같이 태어난 영중에게 그와 똑같은 꿈을 꾸게 만들었다.

 

 아,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가드너 엘리엇은 우주에 노출된 채 자라나 화성에서 태어났지만 전영중은 화성에서 잉태되어 화성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영중은 애초에 정자와 난자인 상태부터 화성에 노출되어 있던 셈이니 가드너보다도 더욱 화성에 적합한 화성인으로 태어났다.

 

 그의 모체와 부체는 4년이라는 화성 연구 기간을 다 채우고 곧장 지구로 돌아가 버렸지만, 영중은 함께할 수 없었다. 이미 가드너로 증명된 연구 결과가 어린 영중을 화성에 묶어 두었다. 영중이 만약 그때, 모체와 부체를 따라갔다면 아마 한 달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심장 비대증으로 곧장 죽었을 일이었다.

 

 영중을 키운 것은 화성 인류 관리 담당 팀장인 툴사였다. 그녀는 최초의 화성 인류였던 가드너의 연인이었다. 가드너는 환경의 탓인지, 갑작스레 지구에 노출된 몸이 견디지 못한 탓인지 그리 오랜 생을 살지는 못하고 일찍 눈을 감았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그의 아버지이자 이스트 텍사스의 첫 개척주인 셰퍼드의 장례와 가드너의 45번째 생일엔 영중도 함께 했으니 아주 빨리 죽은 건 아니라 생각했다.

 

 가드너가 눈을 감던 날 영중은 툴사 역시 가드너의 유해를 안고 지구로 돌아갈 줄 알았다. 오로지 가드너를 만나기 위해 훈련과 공부를 마치고 화성에 왔다는 툴사는 지구인이니까. 그러나 그녀는 ‘가드너의 집은 여기니까.’라는 이유를 대며 사라의 묘비 옆에 그를 묻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센터에 남았다. 

 

 그녀는 뛰어난 학구열을 자랑하는 과학자도 아니었고, 남들은 4년이면 돌아가는 화성 센터에서 인생의 1/3을 살고 있었다. 가드너가 없는 이상 더는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데도 평소처럼 장난을 걸어오며 제 잠옷을 갈아입혀 주는 툴사를 향해 영중이 물었다.

 

‘툴사는 왜 돌아가지 않아?’

‘음? 어디로? 지구로?’

‘응. 거기가 툴사의 집이잖아.’

 

 영중의 말을 듣던 툴사가 콧등을 찡긋 구기며 영중의 파자마 마지막 단추를 잠갔다.

 

‘내가 갔으면 좋겠어, 영중아?’

‘아니라고 하면 가지 않아?’

‘흐음, 이 질문은 뭐지?’

 

 침대에 걸터앉은 영중이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입술을 우물거리는 데에도 툴사는 가만히 영중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답을 기다렸다.

 

‘이제 여기엔 가드너가 없으니까.’

‘그런데?’

‘나의 부체와 모체는 화성 센터 거주 기간이 끝나자마자 지구로 돌아갔어. 집으로 가고 싶었겠지. 이제 여기엔 가드너가 없어. 그러니 툴사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

 

 어린아이답지 않게 또렷이 답을 하는 영중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던 툴사가 영중의 까만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그와 눈을 맞추었다.

 

‘네가 여기에 있잖아, 영중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의 부모도 내가 여기 있지만 돌아갔어.’

 

 그 말에 그건 그렇지, 하고 수긍하던 그녀가 번쩍 다시 고갤 들고 영중의 두 뺨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너와 나는 가족이잖아. 너와, 나와, 가드너. 우리 셋이 말이야.’

‘? 가드너와 툴사는 나를 낳지 않았어.’

‘너를 낳은 이 들의 집은 지구였잖아. 하지만 나와 가드너의 집은 이 이스트 텍사스고, 너 역시 가드너처럼 화성의 아이가 되었고, 또…. 원래 기른 정이 더 무서운 법이야.’

 

 그때 고작 5살이었던 영중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 가지 말만은 깊게 받아들였다.

 

‘그럼, 나의 부모님은 가드너와 툴사야?’

 

 영중의 물음에 시원스레 웃음을 지은 툴사가 영중의 반듯한 이마 위로 입을 맞추었다. 당연한 소릴 하네, 우리 왕자님이. 그날부터 영중은 툴사를 엄마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3년. 

전영중은 훌륭한 사춘기 청소년이 되어 버렸다.

 

 

 

*

 

 

 

「영중. 어디야?」

 

 제 방에 엎드려 툴사의 사진 기록들을 넘겨보던 영중의 손목에 걸린 시계 위로 번쩍이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제야 영중은 내내 보던 앨범 폴더에 다시 잠금 번호를 걸고 날다시피 센터의 중앙을 향해 달려갔다.

 

“영중. 넘어져.”

“넘어지는 건 너구리 너겠지.”

 

 한 손으로 벽을 짚고 자연스럽게 코너를 도는 영중의 등 뒤에서 AI 로봇 ‘너구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너구리’는 영중이 10살 되던 해에 센터의 과학자 하나가 선물해 준 영중의 친구이자, 비서이자, 형제와 같은 존재였다. 이제는 영중 역시 ‘너구리’ 급의 로봇 쯤은 손쉽게 만들었지만, 어리던 날부터 함께한 영중에겐 툴사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다.

 

“아하, 우리 아드님. 누가 자꾸 센터 안에서 뛰라고 했지?”

 

 센터의 중앙에 도착하자마자 중앙 정원의 식물들 위로 물을 주던 툴사가 영중을 향해 눈을 흘겼다. 영중은 대충 웃음을 띠며 툴사의 뒤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 위로 고개를 굽혀 이마를 부볐다. 그녀보다 한참이나 작았던 영중은 어느새 자라나 그녀의 키를 훌쩍 넘어섰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영중이 이렇게 응석을 부리는 것에 약했다.

 

“으음, 17번 수압 제어기 또 고장 났어요?”

“다 고쳤어. 그나저나 또 어디 박혀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그냥. 엄마가 지구에 살던 시절 사진들을 봤어요.”

“내 추억을 여행하다가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말하면 내가 혼내지 못할 줄 알고?”

 

 툴사가 팔을 쭈욱 내밀어 영중의 뒤통수를 툭툭 쓰다듬었다. 영중은 대답 대신 웃으며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호스를 내려 두고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버지도 이해하실 거예요. 지구에 있을 때 엄마의 모습을 보는 건 아버지도 좋아하셨잖아요.”

 

 버기가 줄 서 있을 창고로 내려가며 능청스레 말하는 영중의 대답에 결국 툴사가 웃음을 터트리며 영중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오늘 영중과 툴사는 가드너의 묘지에 가기로 했다. 익숙하게 내려선 창고 앞에서 툴사는 풀 세트 슈트를 입었고, 영중은 작은 산소 호흡기로 코와 입만 가린 채 고글을 챙겨 썼다. 그러고는 세워져 있던 버기 운전석에 올라탄 영중이 툴사를 기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해. 가드너도 밖을 나갈 때는 슈트와 헬멧까지 다 챙겼는데 너는 고작 그 호흡기면 된다는 거 말이야.”

“모든 생물은 진화하기 마련이니까요. 물론 한 세기도 안 되어 진화하는 케이스는 좀 드물지만 애초에 전 화성의 대기 속에 노출된 정자와 난자의 결합체니까. 게다가 제게 맞는 중력은 바로 여기예요. 지구에 가면 제대로 걷지도 못할걸?”

 

자연스럽게 드라이빙 모드로 변경된 화면을 조작하는 영중의 모습을 창문에 기대어 바라보던 툴사가 가볍게 물었다.

 

“영중. 너는 지구에 가 보고 싶지 않아?”

 

 센터를 벗어나 불그스름한 황토색 대지 위로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나가던 영중이 툴사의 물음에 잠시 텀을 두고 대답했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요?”

“그냥. 가드너가 네 나이일 때…. 지구로 왔던 일이 생각이 나서.”

“아빠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고, 또 엄마를 만나러 간 거잖아요. 전 별로 제 모체와 부체를 보고 싶지는 않아서.”

 

 도착지의 좌표와 주행 루트를 입력한 영중이 창문을 단단히 올리고 입에 걸려 있던 마스크를 내렸다. 툴사 역시 헬멧 너머로 대화하긴 버거웠는지 금방 헬멧을 벗어내고 완전히 몸을 돌려 영중을 향해 앉았다.

 

“가드너가 지구에서 찾은 게 그것들만은 아닐걸?”

“그럼요?”

 

 영중의 물음에 그때를 떠올리듯 툴사의 시선이 잠시 허공을 향하다 이내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그 애는 지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걸 물어봤어.”

“음?”

“지구에서 만난 것 중에 뭐가 가장 좋으세요? - 라고.”

“엉뚱한 게 아버지답네요. 근데 그거 답은 있는 질문이었어요?”

“글쎄.”

“혹시 엄마에게도 물었어요?”

“물었지.”

“엄마는 뭐라고 대답했어요?”

“나는…. 음…. 가드너. 가드너를 만나서 좋다고 말했지.”

“으. 하여튼 로맨티스트 커플.”

 

 귓바퀴를 불그스름하게 물들인 영중이 고개를 내젓자, 그 모습이 제법 우스운지 툴사는 또 한 번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다 큰 애 같아도 사회적 교류가 약한 영중은 이런 이야기에 약했다. 가장 좋아하는 지구의 영화들은 온통 로맨틱 영화인 주제에. 툴사는 그런 영중이 아직도 귀여워만 보였다. 목적지에 가까워진다는 알림에 툴사에게 먼저 헬멧을 씌우고, 산소도를 조절하는 진지한 얼굴을 보면서도 말이다.

 

“너도 다녀 와 봐.”

 

 제 턱에 걸치고 있던 마스크를 올려 쓰던 영중이 시선으로만 툴사에게 되물었다. 어디를요? 라고.

 

“지구에서 만나서 가장 좋은 것. 지구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것. 있잖아.”

 

 마침 도착지에 도착한 버기가 자동으로 운행을 종료하며 두 사람이 타고 있던 공간이 온통 조용해졌다. 영중은 순간 당황스러운 마음에 두 눈만 댕그랗게 뜨고 툴사를 바라보았다.

 

“나도 가드너와 채팅 친구로 만났어. 우리 아들이 그걸 답습할 줄은 몰랐지만?”

 

 장난스레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뜬 툴사가 먼저 버기의 문을 열고 내렸다. 잠시 얼이 빠져있던 영중은 허둥지둥 그녀를 따라 내리며 가드너와 사라의 묘석 앞으로 달려갔다.

 

“너구리가 말했죠?!”

 

 짧게 자른 뒷머리 아래로 드러난 영중의 뒷목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

 

 

 

“오늘부터 넌 출입 금지야. 이 배신자.”

 

 센터로 돌아온 영중이 샤워를 마치고 제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자연스레 따라 들어오는 ‘너구리’가 영중의 손바닥에 이마를 밀린 채 멈춰 섰다.

 

“나는 널 배신한 적이-.”

“내가 지구 애랑 채팅하는 거 비밀이랬잖아. 너도 보기만 한다며. 왜 그걸 엄마가 알고 있는 건데?”

“…으음. 사춘기 소년에겐 가끔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법이지.”

 

 ‘너구리’는 능숙하게 말을 돌리며 바퀴를 굴려 복도 끝으로 멀어졌다. ‘너구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방으로 들어가 제 방문에 Lock까지 건 영중이 그대로 제 컴퓨터를 켰다. 아직 채 마르지 못한 머리 위로 수건을 걸치고 익숙하게 지구 인터넷망 채널에 접속하자 영중이 기다리던 사람의 이름 앞에 파란 불빛이 반짝였다. 영중이 손가락으로 그의 이름을 터치하자 모니터 중앙으로 화상 화면이 띄워졌다.

 

“요, 준수.”

 

 모니터에 비치는 반가운 얼굴에 영중이 손을 흔들자, 고개를 처박고 실컷 타이핑 중이던 준수가 힐끗, 시선을 들어 올렸다.

 

- 왔냐?

“응. 뭐 하고 있었어?”

- 보면 몰라? 레포트 쓴다. 씨바거, 해도 해도 끝이 없네.

 

 미간을 잔뜩 좁히고 화상 모니터 옆에 띄워둔 탭을 끄는 준수의 손길이 거침없었다. 아이고, 준수야. 모니터 박살 나겠다. 영중은 의자 위에 무릎을 올려 앉아 쿠션을 끌어안고 그런 준수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성준수는 전영중이 접촉한 유일하고도 온전한 지구인 1호였다. 나머지는 다 센터 사람들이었으니까. 전영중이 성준수를 어떻게 찾아냈느냐면…. 사실은 툴사 몰래 가드너의 영상 일지를 훔쳐보았다. 그가 어떻게 툴사를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된 걸까. 가드너가 몰래 보았던 로맨스 영화를 보던 영중의 충동적인 호기심이었다. 중간에 화성을 떠나 지구로 가게 되었다는 말 뒤로 영상 기록은 더 이상 기록되지 않았지만, 영중은 지구의 인터넷망에 접속하고, 채팅 상대를 찾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영중은 어느 새벽 충동적으로 가드너의 일지를 되짚으며 지구의 SNS 사이트로 접속했고, 그날 처음 만난 것이 바로 성준수였다. 성준수는 해당 SNS를 통해 소셜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가는 과제를 받았다고 했는데 온통 여자애들의 데이트 신청 혹은 유치한 플러팅이 짜증스러워 끄려던 찰나 영중과 연결이 되었다고 했다.

 

 나이 비슷하고, 허우대 멀쩡한 남자애고. 최소한 ‘네 여자 친구가 되고 싶어.’라는 소리는 안 들을 것 같아 대화를 수락했다던 성준수와는 제법 말이 통했던 탓인지 벌써 10개월째 밤마다 소통을 이어갔다. 그런 준수에게 영중은 SNS 사이트에 들어가자마자 하트를 쏟아부어 받고 있느라 랭킹에 올라 온 탓에 가장 먼저 보인 사람이 너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째서 준수는 매일 매일 과제를 하는 거지? 어제도 한 것 같은데….”

- 내 말이, 씨발! 무슨 과제가 수업마다 나오고 자빠졌어. 개빡치게.

“…준수야. 나 방금 너를 통해 또 새로운 악담을 하나 배운 것 같다. 개빡치게? 그거.”

- 아, 새끼. 넌 뭐 친구들이랑 이런 말 안 쓰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

“나 친구 없는데?”

 

 영중과 대화를 시작하고 의자에 널브러져 누워 있던 준수의 고개가 들렸다. 이내 매서운 눈으로 (화가 난 건 아닌 것 같고, 준수는 원래 그렇게 생겼다.) 영중을 위, 아래로 훑어보던 준수가 한 쪽 눈썹을 삐뚜름히 들어 올렸다.

 

- 뭐야. 너 뭐, 학교 애들이 괴롭히냐?

“응? 아니. 난 학교 안 다녀.”

- 오우, 불량 청소년?

“학교를 안 다닌다고 불량 청소년이라는 건 편견이야, 준수.”

- 그러네. 이건 미안. 근데 학교 안 다니는 거랑 친구 없는 건 무슨 상관이야?

 

 영중은 준수와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가끔 떠올렸다. 얘는 진짜 이과에 가야 하는데, 라고. 생각이 어쩜 이렇게 단순하지. 왜 A와 B를 연관 짓지 못하지? 잠시 딴생각으로 고개를 기우뚱 기울이던 영중이 낮은 한숨을 삼키며 대답했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 여기는 -”

- 어. 나도 전에 말했다. 네가 화성인이면 나는 마이클 조던이라고.

 

 전영중은 성준수와 만난 지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본인이 화성에 살고 있는 화성 인간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보다시피 성준수는 좆도 안 믿었다. 아. 이런 말투도 성준수한테 옮았다. 툴사가 한국어를 할 줄 몰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니었으면 당장 머리채 잡혀 혼났을 테니.

 

“진짜 안 믿네. 뭘 보여줘야 준수가 내가 다른 화성 인류인 걸 믿지?”

- 네가 뭘 보여줘도 내 대가리로는 넌 그냥 나랑 같은 지구에 사는 인간 고딩이야, 인마.

 

 팔걸이에 다리를 걸치고 그 위로 팔을 괴고 앉은 성준수가 피실 웃었다. 영중은 준수의 대답에 입술을 삐죽였다.  

 

“내가 진짜 다음엔 이 화상 모니터를 들고 올림푸스 화산이라도 보여줘야겠어.”

 

 영중의 말에 허리까지 굽혀가며 하하, 웃음을 터트리던 준수의 모습에 영중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니, 왜 웃어?”

- 야. 올림푸스 화산 영상 교육 자료로 배포된 지가 언젠데 네가 그거 튼다고 내가 못 알아보겠냐?

 

 성준수는 어디 가서 사기는 절대 안 당할 거다. 진짜 더럽게 사람 말을 안 믿는다.

 

“아니. 진짜 내가 그 앞에서 셀카라도 찍어 보내 줘?”

- 오우, 우리 영중이 합성 프로그램도 돌릴 줄 알아?

“와, 진짜 답답하네. 이걸 진짜 여기로 데려와서 보여줄 수도 없고.”

 

 답답함에 주먹을 쥐고 제 가슴팍을 쿵쿵 두드리는 영중의 모습에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린 성준수가 이내 씁쓸한 얼굴로 웃음을 거두었다.

 

- 야. 설령 네가 진짜 화성 인류라고 해도 나 같은 서민이 어떻게 이스트 텍사스를 가냐? 거기 가는 건 과학자 아니면 마빡이 깨지게 돈 많은 부자들뿐이라며.

“부자는 못 와. 우주 항공 훈련을 못 견디거든. 인내심이 쥐똥 같아서.”

- 그래. 그러니 인내심도 쥐똥같고, 그렇게 부자도 아닌 것 같고, 과학자는 더더욱 아닌 것 같은 우리 영중이는 당연히 화성 인류가 아닌 게 당연하겠지?

 

 성준수는 개 같이 논리 없는 소릴 논리적으로 말하는 능력이 있었다. 한 손에 펜을 돌리며 어디 한 번 대꾸할 테면 해 보라는 얼굴의 준수를 잠시 노려보던 영중이 준수를 불렀다.

 

“준수야.”

- 어. 할 말 생각 났어?

“너는 지구에서 뭐가 제일 좋아?”

 

 모니터 너머의 하얀 얼굴을 한참 보고 있자니 낮에 툴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성준수가 지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중은 가드너처럼 지구에 간 적도, 그곳에서 준수를 만난 적도 없으니 그게 자신이 아닐 건 분명했지만 그래도 듣고 싶었다. 저렇게 예쁜 얼굴로 매일 화내고, 욕만 하는 성준수가 자신의 별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 갑자기?

“궁금해서.”

 

 으음, 하고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준수가 돌려대던 펜을 책상 위로 던지듯 내려놓으며 씨익 웃었다.

 

- 농구.

“농구?”

- 어. 아마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할 건 농구일걸?

 

 영중은 기억을 곰곰이 더듬어 농구가 뭐였더라, 떠올렸다. 언젠가의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동그란 공을 머리보다 높은 곳에 자리한 골대에 밀어 넣는 스포츠. 한 팀은 다섯 명이고 속도는 물론 근력까지 요구되는 운동. 어린 날의 영중은 한 번쯤 농구해 보고 싶었지만, 지구와 다른 중력이 작용하는 화성에서는 영중 외에 그 누구도 영중과 함께 농구를 해 주지 않았다. 물론 농구할 공간도 없었고. 공도, 골대도 없었다. 황량한 사막에서 달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너 다음에 보면 같이 농구나 한판 하자.

 

 잠시간 말을 잃은 영중을 부른 준수가 농구를 같이하자 청해왔다. 영중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농구해 보고 싶어.”

 - 뭐야. 한 번도 안 해 봤단 말이야?

“그러니까 준수야. 여기가 화성이고, 여긴 중력이 지구와 다르게 작용하고…"

- 그래. 나는 마이클 조던이고. 아니, 사실 마이클 조던보다는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되고 싶긴 한데…

 

 영중은 다시 한번 가드너의 묘비 앞에서  툴사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 영중. 너는 지구에 가 보고 싶지 않아? ]

[ 너도 다녀 와 봐.  지구에서 만나서 가장 좋은 것. 지구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것. 있잖아. ]

 

 그날, 영중은 지구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

 

 

 

 영중은 다음 날 당장 툴사를 찾아가 그녀의 말대로 지구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두 번 묻지도 않고 그저 빙긋 웃으며 준비를 시작해야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반나절쯤 지나 다시 영중을 찾아온 툴사의 품에는 제법 두툼한 서류철이 안긴 채였다. 그녀는 그것을 영중 앞에 내밀고 맞은편에 앉아 펜을 건네었다.

 

“이건 네가 지구에 가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훈련들과 체크해야 할 신체검사 리스트야. 보고 하나씩 클리어될 때마다 사인이 찍힐 거야. 그리고 이 모든 문서에 사인이 그려지는 날, 너는 지구를 향하는 우주선에 타겠지. 내 기억으로는 아마…훈련은 2, 3개월인데 …지구까지 비행 기간이 그 당시엔 6개월쯤 되었어. 지금은 조금 당겨져서 4개월 정도 걸리려나?”

 

 영중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화성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툴사가 내민 서류들을 한 장씩 넘겨보며 조금은 설렜고, 조금은 두려웠다. 자신도 가드너처럼 지구에 가게 되면 아프게 될까? 신체 능력은 피지컬부터가 가드너보다 컸지만, 인체 적합도는 그보다 영중 쪽이 더욱 화성화 된 상태였다. 그렇기에 신체검사 리스트가 이렇게나 두꺼운 것이겠지. 한 장씩 넘기던 서류를 손에서 놓자 가장 앞 장에 붙은 서류가 보였다.

 

「 지구 방문 사유서 」

 

 가장 윗줄에 적힌 타이틀 외엔 온통 백지인 서류를 내려다보는 영중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런 건 솔직하게 써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영중의 지구 방문 사유는 농구를 해 보기. 뿐이었다. 물론, 그 농구를 하기 위해 성준수를 만나기가 부차적으로 붙겠지만. 툴사가 내민 펜을 손에 쥐고 한참 머뭇거리는 영중을 바라보던 툴사가 의자 등받이에 깊이 등을 기대었다.

 

“참고로 그거 읽을 사람은 이 제네시스 스페이스 테크놀러지의 간부들과 NASA 화성 이주 팀 담당자니까 너무 솔직히 쓰지는 말고. 어린애 같은 소리하면 아마 금방 기각될걸? 그런 인간들이니까.”

 

 그녀의 말에 ‘농’을 쓰던 영중의 펜이 멈추었다. 영중은 다시 한참이나 머릴 굴리다 결국 고개를 들고 툴사를 올려다보았다.

 

“거짓말은 나보다 엄마가 잘하던 거 같은데….”

“까분다.”

“으음, 아빠라면 뭐라고 썼을까요?”

 

 그 말에 툴사가 추억을 떠올리듯 눈을 내려뜨고 웃었다. 알잖아, 그의 첫 번째 목적은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일이었어. 그녀의 대답이 영중이 입술을 꾹 말아 물고 펜을 흘려 썼다.

 

「 모체와 부체가 궁금합니다. 만나보고 싶습니다. 」

 

 영중의 글씨를 내려 보던 툴사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는 듯 다른 파일철에서 새 사유서를 꺼내며 방금 영중이 쓴 사유서를 빼앗아 찢어버렸다.

 

“보고 싶다는 부모님을 모체와 부체라 부르는 아들은 그 진위가 의심받기 쉬워. 왜 낳아놓고 그냥 갔냐, 하며 살인이라도 일으킬 것 같잖아.”

“…제발 그놈의 CSI 시리즈 좀 끊어요, 엄마.”

“흥, 노트북 같은 멜로 영화나 보면서 우는 아들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니다.”

 

 영중과 툴사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류들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모체와 부체는 생물학적 부모님 (툴사는 ‘생물학적’이라는 단어 좀 빼면 안 되냐고 타박했지만, 영중은 고집스럽게 그 단어를 썼다. 자신의 부모님은 가드너 엘리엇과 툴사 엘리엇이었으니까) 이라는 단어로 대체 되었고, 그 외에도 자신의 신체가 가드너와 비교해 얼마나 더 화성에 적합한 인체가 되었는지 비교가 필요하다는 학술적 사유도 추가 되었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화성에서 이스트 텍사스의 테라포밍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 지구의 테라포밍 현황을 직접 보고 싶다는 사유도 한 번 추가 시켰다.

 

 사유서를 다 읽고 관찰 보호 담당자란에 사인을 남기던 툴사가 작게 감탄했다.

 

“아들, 너 정치하면 잘하겠다.”

“왜요?”

“네가 우리 가족 중에 가장 거짓말이 능숙한 것 같아서. 그것도 굉장히 신뢰감 넘치는 거짓말을.”

 

 칭찬인지 아닌지 모호한 툴사의 말에 영중이 머쓱한 얼굴로 제 뺨을 문질렀다. 다음 장에는 현재 영중의 신상 명세에 관련된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태어난 날짜, 이름, 나이 뭐 그런 것들.

 

 Young Joong - JEON - Elliot. 영중의 이름 뒤에는 영중이 7번째 생일에 선물 받은 가드너와 툴사의 성이 붙었다. 툴사는 영중을 입양하기 위해 NASA를 통해 생물학적 모체와 부체에게 허락을 구했고, 그 들은 더 이상 지구를 떠날 생각이 없다는 말로 영중을 엘리엇 가족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 뒤로 한 참 뒤에나 들었지만 7살 생일의 전영중은 아주 많이 행복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란에 가드너와 툴사의 이름을 넣은 영중이 그 아래에 놓인 칸에서 다시 한번 손이 멈추었다. 생물학적 부모의 이름을 적는 란이었다. 그러나 영중은 제 모체와 부체의 이름조차 몰랐기에 잠시 머뭇거리다 두 칸 다 Unknown-JEON 이라고 적었다. 

 

 가볍게 신상 명세를 작성하고 그 아래엔 다시 툴사의 사인을 받고, 그 뒤는 앞으로 이루어질 훈련과 신체검사 리스트들이 즐비했다. 툴사는 당장 내일부터 훈련과 동시에 신체검사가 시작될 테니 각오하라는 말을 하며 보기 좋게 한쪽 눈을 감았다 떴다. 

 

 새로운 경험이 시작되려는 느낌에 영중이 떨리는 가슴팍을 손으로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일찍 쉬는 게 좋을 거라는 툴사의 말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는 영중을 툴사가 불러 세웠다.

 

“아, 맞다. 아들. 이거 제일 중요한 건데.”

“네?”

“화성에서 떠나기 전에 너의 그 채팅 친구에게 꼭 얘기해 두렴. 화성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4개월 정도 걸리고, 지구에 도착해서 한동안은 신체검사를 당할 거야. 입원의 개념이라 생각하면 돼.”

“그 애는 제가 화성 인류인 것도 믿지 않는걸요.”

“그래도 얘기하렴. 가드너는 말도 없이 잠수 타고 7개월 만에 나타났다가 나에게 가장 먼저 뺨부터 맞았으니까.”

 

 영중은 잠시 성준수를 떠올렸다. 그것도 매번 화가 가득한 얼굴로 모니터를 부실 듯 과제 탭을 닫는 그의 손길을. 그가 믿건 아니건 아무래도 연락은 꼭 해야만 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

 

 

 

 훈련도, 신체검사도 영중의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지구의 중력에 맞춘 공간에 들어가 중심을 잡는 연습을 하고, 그게 익숙해지면 걷는 연습을 하고, 나중엔 공기에 저항하며 달리는 연습까지 했다. 화성의 중력에 익숙해진 영중은 처음엔 제대로 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중심축 라인을 연결하고 제법 속도를 내며 달려냈다.

 

 게다가 지구 인류에 비해 낮은 골밀도를 높이기 위해 팔과 목, 다리의 뼈 옆에 지지대와 같은 철심과 연골 조직들을 이식하고 화성에 비해 과도한 산소를 들이켜고 깊은 이산화탄소를 뱉어내야 하는 호흡법을 위해 한동안은 계속 지구형 폐호흡 훈련도 병행해야 했다.

 

 그 지난한 훈련과 수술들 사이에서도 밤마다 영중은 제 방에 틀어박혀 채팅창을 켰다. 피곤한 훈련에 가끔은 채팅창을 켠 채 잠이 든 영중의 모니터 위로 성준수가 사인펜으로 휘갈긴 ‘잠이 오세요? 개 팔자가 여기 있네.’라는 말에 이미 성준수가 학교에 가 없는 아침에 눈을 뜬 영중은 한참 웃었다.

 

 그날 밤 영중은 준수에게 자랑했다. 

 

‘나 그 말 알아. 개 팔자가 상팔자다.’

‘? 그거 모르는 한국인도 있냐?’

‘준수야. 제발 나에 대해 관심 좀 줄래? 분명히 전에 말했는데. 우리 부모님은 모두 미국인이고, 나는 텍사스에 살고 있으며, 내가 지금 이렇게 한국어가 유창한 건 모두 우리 부모님이 내가 뿌리를 잊지 않게 하려고 학습 시킨 ㄱ ….’

‘어, 네 한국말 존나 유창해서 맨날 까먹는다. 근데 이 새끼 그러면서 내 영어 에세이 과제는 안 도와줬겠다?’

‘당연하지. 과제는 스스로 하는 거야, 준수.’

 

 성준수는 화면을 향해 두 손의 검지 손가락을 모두 펴 보였다. 영중은 어쩐지 매번 짜증을 부리는 준수가 재미있어 장난스레 웃기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이제 당장 내일, 영중은 지구를 향하는 우주선에 타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성준수에게 말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긴장되는 마음에 훈련이 끝난 후부터 곧장 샤워를 하고 일부러 NASA 마크가 잘 보이는 티셔츠를 꺼내 입은 영중이 모니터 앞에 앉아 준수가 접속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날 성준수는 바빴던지 끝내 접속하지 않았다. 영중은 아쉬운 마음으로 준수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가 돌아오면 읽을 수 있도록.

 

「 준수야. 너는 믿어 주지 않았지만 나는 정말 화성 인류고, 내일 항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가게 되었어. 내가 타는 기체의 이름은 ‘트리에스테 ( Trieste )’호 라고 해. 맞아. 지난 기말고사 때 네 지구 과학 15번 문제의 답이었던 쟈크 피가르의 잠수함이랑 이름이 똑같지. 나도 처음 이름 듣자마자 그 문제 틀리고 열받아서 베개 쥐어패던 네 얼굴부터 생각이 나더라고. LOL. 어쨌든 나는 내일 출발을 하고 아마 지구에 도착하는 건 문제 없는 한 4개월 후일 거야. 근데 직에 도착해도 신체 적응 기간을 가져야 한다니 그보다 조금 더 걸릴지도 몰라. 우리가 만나는 것 말이야. 준수야. 나 금방 갈게. 그러니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

 

 메시지를 전송한 영중이 마지막으로 모니터를 동료하고 온전히 갖춰 입은 슈트 차림을 한 채 헬멧을 가지고 방을 나섰다. 드디어 화성을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다.

 

 

 

*

 

 

 

 성준수는 모니터 위에 띄워진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다 결국 또 한숨을 푸욱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러니까 어제는 수업이 끝나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3:3 농구를 하고 집에 돌아와 바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하는 농구에 정신이 팔려 오늘은 안 들어갈 거라는 메시지도 남기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준수는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채팅창에 접속을 했고, 그곳에는 익숙하게 온라인 표시가 된 영중의 이름 대신 미확인 메시지창만 깜빡이고 있었다. 

 

 기다렸을까? 안 오면 적당히 자지. 에이씨, 괜히 미안하네. 제 뒷머리는 벅벅 긁던 준수가 미확인 메시지를 누르자 곧장 영중의 이름과 함께 긴 메시지가 떠올랐다. 한 줄, 한 줄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성준수의 미간이 점점 더 좁혀 들었다.

 

 전영중은 어느 날부터 자꾸 자신이 이스트 텍사스에 살고 있으며, 자신은 신체 구조부터가 화성 인류라 지구는 가 본 적이 없다는 개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허우대 멀쩡하길래 존나 멀쩡한 새끼인 줄 알았는데 학교도 다니지 않는다는 걸 보니 단단히 정신이 아픈 애구나, 싶었다.

 

 나날이 우주 과학은 발전하고 있었지만, 평범한 소시민 고등학생인 준수에게는 SF영화만큼이나 허황된 소리였다. 솔직히 반도 못 알아듣기도 했고. 나중엔 자연스럽게 전영중 화성인 썰을 먹금하며 받아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마다 전영중은 답답하다는 얼굴을 했지만 금방 방긋방긋 잘도 웃었다.

 

 근데 그게 진짜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처음엔 영중의 메시지도 이 새끼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는 건가, 정신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나. 진짜 공상에 빠진 건 아닐까…. 싶어져 마음이 더 안 좋았다. 그러나 영중의 메시지를 다 읽고도 창을 끄지 못하고 걱정에 빠진 준수의 모니터 위로 속보 위젯이 떠올랐다.

 

「 화성 탐사체 ‘트리에스테’호. 지구 시각 어제 오전 10시경 화성에서 출발하여 지구로 귀환 중. 이번 정착지는 NASA 기지가 아닌 한국 항공우주 연구원으로 밝혀져 주목. 정착 예정일은 4개월 후로 예측. 」

 

 위젯을 한참 들여다보던 준수가 다시 영중의 메세지 창을 열어 다시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화성. 항우주선. 트리에스테호. 4개월 뒤. 그리고 화성 인류 전영중. 이 모든 게 진짜였다니. 준수는 드물게도 넋이 나간 얼굴로 모니터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세상에. 미친놈이 아니라 진짜 외계인이었다니. 잠시 경악 아닌 경악을 하던 준수가 이내 입을 꾹 다물고 캘린터 창을 켰다. 4개월 후…. 씨발. 수능 2달 전이네. 이 새끼는 왜 하필 와도…. 

 

 준수는 현실 적응력이 매우 빠른 편이었다.

 

 

 

*

 

 

 

 트리에스테스호가 지구에, 그것도 한국에 도착한 것이 벌써 2달 전이었다. 영중은 메시지에 쓴 대로 정말 무슨 신체 실험이라도 당하는지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준수는 수능 하루 전, 그러니까 어제까지도 채팅창을 켜 둔 채 공부를 했지만, 영중의 이름 앞은 불이 꺼져 있을 뿐이었다.

 

 목도리를 두르고 집을 나서며 준수는 영중의 생각을 떠올렸다. 영중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동안 준수의 일상을 들려주고 싶었다. 농구를 하고, 과제들을 하고, 시험을 쳤다고. 사실 자신은 고등학교 농구부원이라 실적만 있으면 수험 공부는 적당히 커트라인만 넘기면 되었는데 다행히 봄에 치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수능 치러 가는 길이 그렇게 마음 무겁지는 않다는 말도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 2학기 중간고사 과탐 시험에 나온 문항 하나는 네 덕분에 맞췄다고도 말해 주고 싶었다. 문제는 화성에도 지각 활동이 존재하는가였고, 준수는 영중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올림푸스 화산을 근거로 답을 맞혔다. 그러고 보니 그때 정말 화산 앞에서 셀카라도 찍어 보내라고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6개월째 못 본 영중의 얼굴이 가끔, 아주 가끔 보고 싶었기에.

 

 시험장 교문이 보일 때쯤이 되자 준수는 영중의 생각을 거두고 울러 맨 가방을 한 번 더 추켜 올렸다. 커트라인 못 맞춰서 입학 취소되면 존나 억울하지. 준수는 습관처럼 자신만의 주문을 외웠다.

 

“Rockets is looking for a quick shot...Bowen is all over, Mcgrady, foul was picked up..And Its four point play Mcgrady from Downtown"

 

 정말 마지막 골을 던질 시간이었다.

 

 

 

*

 

 

 

 던진 게 볼이 아니라, 대학 입학을 향한 시험 점수가 아니라…. 내 대가리였나?

 

 준수는 교문 앞에 기대어 이상한 선글라스를 끼고 제 입에서 나오는 입김을 한참 불며 서 있는 남자를 보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던 걸음을 멈추었다. 자신보다 조금 더 큰 키와, 아주 조금 더 큰 피지컬의 남자가 어딘가 낯이 익은 탓이었다.

 

 목에는 두터운 목도리를 두르고 다른 수험생들처럼 패딩을 챙겨 입은 사이로 농구공만큼 동그란 머리통이 보였다. 그러니까 성준수에게 익숙한 것은 바로 저 동그란 머리통이었는데…. 준수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으로 남자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렸다. 그러니까 저 동그란 머리통이. 아무리 봐도 모니터 너머로 보던 그것과 비슷한데…

 

“어? 요! 준수!”

 

 한참이나 제 입에서 나오는 입김을 보던 남자가 순간 고개를 돌리더니 준수를 향해 아는 척을 해 왔다. 제법 반갑게 손을 들고 흔들며 목도리 너머로 입술을 잔뜩 벌리고 웃는 남자는 오늘 아침 준수의 머릿속을 뛰어놀던 전영중이었다. 

 

 준수는 영중의 인사에 대꾸하는 대신 성큼 걸음을 옮겨 곧장 영중의 운동화 끝에 제 운동화 앞코를 맞대고 섰다. 그리고.

 

“어억..!!”

“야, 이 새끼야. 넌 이게 4개월이냐?”

 

 곧장 주먹을 영중의 배로 꽂아 넣은 준수 덕에 영중의 이마가 준수의 어깨 위로 쏟아졌다. 제법 아픈지 아직까지 영중의 배에 박혀 있는 준수의 손을 꽉 감싸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 있었다.

 

“..아니, 내가 조금 더 걸릴 수도 있다고 했잖아….”

“그 조금이 두 달이 넘을 거라고는 말 안 했잖아, 이 자식아.”

 

 어금니를 악물고 영중의 귓가에 짓이기듯 읊는 준수의 목소리에 영중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이내 조심스레 고개를 든 영중이 물었다.

 

“나…. 기다렸어?”

 

 그 말에 이번엔 준수의 입술이 다물렸다. 바짝 붙어 선 두 사람을 힐끗거리는 시선들이 몇이나 지나고 나서야 준수가 입을 열었다.

 

“어.”

“대체 왜?”

“너 진짜 나랑 종족이 다른 새끼인가 확인하려고.”

 

 그제야 준수는 영중의 손을 털어내고 그를 지나쳐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 곧장 영중이 따라붙으며 연신 조잘거렸다.

 

“나 그동안 지구에 오자마자 걷고, 숨 쉬는 연습도 하고 심장 비대증 예방 처치도 받느라 바빴어. 화성에서도 엄청 열심히 훈련했는데 확실히 지구는 무겁더라.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너무 힘들었어. 그래도 빨리 훈련 끝내고 준수 만나고 싶어서 엄청 열심히 했어. 그리고 매일 신체 이상 체크도 하고, 기록도 하느라 제대로 된 방을 배정받지 못해서 도저히 개인 모니터를 사용할 수가 없었….”

 

 영중은 준수가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아도 쉬지 않고 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벌써 준수의 걸음을 따라잡아 곁에 선 영중에게 시선도 주지 않던 준수가 겨우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들어서자, 영중의 팔목을 잡아끌고 더 좁은 골목길로 숨어들었다. 그제야 마주한 준수가 영중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겨 냈다. 

 

“어….”

“뭐야. 눈깔이라도 파충류처럼 생겼나 했더니 똑같잖아.”

“... 준수야. 넌 나랑 10개월이나 화상 채팅을 해 놓고 그게 할 질문이니?”

 

 뭐. 입 모양으로만 툭 대꾸한 준수가 영중을 벽에 기대 세워둔 채 또 한 번 위아래로 훑었다. 영중은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괜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자 이내 준수가 손을 뻗어 영중의 고개를 정면으로 고정시킨 채 시선을 맞췄다.

 

“혹시 키야?”

“…뭐?”

“아니면 피지컬? 네 허우대가 이렇게 멀쩡한 게 혹시 화성 인류들의 특징이냐?”

 

 준수의 물음에 영중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화성 인류라고 해 봤자 가드너와 자신 둘뿐이기에 견본 대상이 너무 한정적인 탓이었다.

 

“야. 나도 화성 가면 그렇게 더 크냐?”

 

 그러나 뒤따라온 준수의 물음에는 똑 부러지게 대답해 줄 수 있었다.

 

“준수야. 그냥 내 피지컬이 부럽다고 말로 해.”

“에이씨. ”

 

 진짜였던지 준수가 한 걸음 멀어지며 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짜증 섞인 하얀 얼굴은 영중이 모니터 너머로 보던 것과 똑같았다.

 

“나는 너 때문에 지구인들은 다 하얀 줄 알았어.”

“뭐?”

“근데 너 기다리면서 본 사람들은 너만큼 하얗지 않길래 너만 하얗구나 했어. 생각해 보면 센터에 있는 연구원들도 다 지구인인데 왜 너만 생각하고 지구인들은 하얀 게 종족성인가 했지? 좀 바보 같다.”

 

 저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며 씨익 웃는 얼굴에 준수 역시 푸슬 웃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영중이 조심히 손을 뻗어 준수의 손을 가볍게 말아 쥐었다. 준수의 시선이 영중을 향했다.

 

“준수야. 나는 너를 보러 5,452만 km를 날아 왔어.”

“왜?”

“너랑 농구해 보려고.”

 

 영중의 말을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준수의 미간이 한 번 더 좁혀졌다. 영중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준수의 손을 쥐지 않은 손을 그의 미간을 쭉쭉 눌러 폈다.

 

“네가 그랬잖아. 네가 지구에서 가장 사랑하는 게 농구라고.”

“단지 그 이유로?”

“응. 네가 지구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을 같이 해 보고 싶었어.”

“왜?”

“그러면 나도 지구에서 가장 좋은 게 무언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걸 왜 찾고 싶은데?”

 

 준수의 물음에 으음, 하고 말을 끌던 영중이 귓가를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여 목도리 속으로 제 입가를 묻었다. 

 

“우리 아빠가 지구에 왔을 때, 가장 좋은 게 뭔지 계속 찾았데.”

“그래서 너도 아빠 따라 하게?”

“응. 그러다가 정말 좋은 걸 찾아냈거든. 우리 아빠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굴리다 눈이 마주치자 가벼운 눈웃음을 짓는 영중의 얼굴을 바라보던 준수가 머릿속으로 공을 어디에 뒀더라, 기억을 더듬었다. 아, 근데 지금 땅 얼어서 밖에서 하긴 좀 그런데. 학교 체육관에 외계인, 아니…외부인 데리고 들어가도 되나? 잠시 고민을 하던 준수가 그대로 영중과 맞잡은 손을 당기며 골목길을 벗어났다.

 

“어디가, 준수?”

“농구하러. 해 보고 싶다며.”

 

 그 말에 얼른 준수의 곁으로 다가선 영중이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준수를 돌아보며 마주 걸었다.

 

“진짜 해 줄 거야? 근데 나 농구 한 번도 안 해 봤어. 그래도 네가 전에 추천해 준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영상은 몇 개 찾아 봤어. 영상 자료실에 있더라? 그리고 마이클 조던 경기도 봤어. 나는 마이클 조던이 더 멋있었던 것 같아.”

“조던은 신이고, 인마. 티맥은 내 꿈이고.”

“그렇구나. 준수는 농구 잘해?”

 

 그제야 준수는 아침 내내 떠올렸던 이야기들을 영중에게 해 줄 수 있었다. 사실 자신은 고등학교 농구부원이라 실적만 있으면 수험 공부는 적당히 커트라인만 넘기면 되었는데 다행히 봄에 치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수능 치러 가는 길이 그렇게 마음 무겁지는 않았다고. 그리고 이번 2학기 중간고사 과탐 시험에 나온 문항 하나는 네 덕분에 맞췄다고도.

 

 문제는 화성에도 지각 활동이 존재하는가였고, 준수는 영중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올림푸스 화산을 근거로 답을 맞혔다고 하자 영중은 꼭 제 일처럼 기뻐했다. 

 

“준수 나 아니었으면 그 문제 틀렸겠네?”

“그러게.”

“그럼, 나한테 감사 인사 정도는 해야지. 동방예의지국이라며, 한국은.”

 

 능청스러운 영중의 말에 준수는 가운뎃손가락을 그의 코 앞에 들어 올렸다. 영중아, 이게 바로 지구인 K-고딩의 예의란다. 그러자 영중이 입술을 삐죽이며 영어로 한참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욕인 것 같아 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영중을 흘겨보았다. 준수의 싸늘한 눈빛에 영중이 입술을 말아 물고 고개를 돌렸다. 준수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려다 말고 영중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간판에 시선을 멈추었다.

 

“야.”

“어?”

“우리 사진 한 장만 찍자.”

 

 영중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의 손을 잡아끌고 건너편에 자리한 즉석 사진기 안으로 들어간 준수가 가장 앞에 있는 코너로 대충 영중을 밀어 넣었다. 영중은 처음 보는 곳에 여기저기 주변을 둘러보느라 분주했다. 준수 역시 즉석 사진은 여동생인 지수가 찍어 오는 것만 봤지 제가 직접 찍으러 온 건 처음이라 벽면에 붙어 있는 조작법을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갑자기 사진은 왜?”

 

 카드기에 카드를 찍고 가장 깔끔한 프레임을 골라 누르는 준수의 뒤에 선 영중이 준수에게 물었다. 그냥. 너 보고 싶을 때 꺼내 볼 사진이 없던 게 생각나서. 준수는 속으로만 대답을 내밀고 얼른 영중의 옆으로 가 그의 어깨에 한 팔을 둘렀다.

 

“나는 외계인 만난 인증샷. 너는 지구인 만난 인증샷. 야, 앞에 봐.”

 

 속으로 한 말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내어주며 준수는 영중과 사진을 여섯 컷이나 찍었다. 카메라는 영 질색이라 어딘가 굳은 표정의 준수와 달리 영중은 어리둥절한 얼굴에서 점점 웃는 낯으로 변했다. 찰칵거리는 소리에 맞추어 잔뜩 얼굴을 구기며 웃던 영중은 마지막에 최종 컷을 선택할 때가 되어서는 반나절쯤 전 수능 수학 문제를 풀던 준수의 낯만큼이나 진지해졌다. 

 

“아, 적당히 골라.”

“대체 왜? 기왕 기념사진이면 잘 나온 걸 골라야지. 아, 이거 좋다.”

 

 영중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영중의 신이 난 얼굴을 본 준수가 슬쩍 같이 미소를 그린 컷이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톡하고 뽑혀 나온 사진 두 장을 한 장씩 나눠 가지고, 핸드폰 영상 기록 저장 폴더에 전송한 두 사람은 이제 정말 체육관을 향해 걸어갔다. 

 

 오는 내내 마주 잡았던 손은 패딩 주머니에 꽂은 준수와 다르게 영중은 걷는 동안에도 내내 사진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그렇게 좋냐?”

“응. 지구에서 처음 사진이잖아. 그것도 지구에서 처음 생긴 친구와 찍은.”

 

 목소리까지 신이 난 영중을 데리고 익숙한 학교 체육관을 향하는 준수의 곁으로 바짝 붙어 걷던 영중이 준수를 불렀다.

 

“준수야.”

“왜.”

“나 지금까지는 이 사진이 제일 좋은 것 같아.”

“뭐?”

 

 영중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준수가 발을 멈추고 영중을 향해 고갤 돌렸다.

 

“지구에서 가장 좋은 것. 지금은 이 사진이야.”

 

 모니터라는 벽이 없어진 채, 지금 제 곁에 선 채 아이처럼 웃음 짓는 영중을 바라보는 준수의 시선이 꼼짝도 하지 않고 영중에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곧 성준수는 다짐했다. 전영중에게 지구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아주 많이 만들어 줘야겠다고. 그리고 그가 돌아가는 날 꼭 다시 물어보겠다고. 지구에서 만난 것 중에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그때 영중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모두 준수 자신이 쥐여준 것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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