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0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애정과 희망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교정. 오늘도 서울동부구치소는 상호 간 애정 그리고 희망이 가득차다 못해 넘친다.

 

“이 씹새끼가…. 야, 야. 씨발 나와 봐.”

“아주 치겠다 준수야….”

 

 그러니까 서울동부구치소 2년차 막내 기 모 군 가라사대. 애정은 왼쪽 주먹이고,

 

“다물어.”

“우리 성 검사님 아주 깡패 새끼 다 됐네.”

 

 희망은 오른쪽 주먹이다.

 

“왜 또 지랄이냐고. 이 씹새끼 전영중아.”

“글쎄……. 준수야. 네가 지금 과민반응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 한마디가 시초였다. 말 다 했냐? 아니. 덜 했는데. 눈깔이 돌았다. 됐고 씨발아 아가리 꽉 물어. 퍽! 둔탁한 타격음에 일순 나와 있던 모든 죄수들을 비롯하여 시선이 몰린다. 이미 영중이 준수에게 주먹으로 뺨을 세게 처맞은 뒤였다. 와하하… 하하하. 하하. 하하. 하, 준수야…. 깡패라기엔 근력이 후달리고. 검사라기엔 성정이 부족하고… 하나같이 애매하다 그치? 이 씨발 새끼가 처맞고도 입을 처놀리네. 아 맞다. 이제 검사 아니지. 음. 자격 정지? 하, 이 씨발이 진짜……. 준수가 아예 멱살 휘어 잡고 발로 영중을 존나 세게 깠다. 육안으로도 영중과 준수는 십 키로는 차이가 났다. 해봤자 얼마 안 튕겨져 나갔다. 영중이 질세라 준수를 들이받았다. 텅! 씨발 개무거워. 숫자로 밀어붙이면 별수 없어서 준수도 싸대기 몇 대를 기깔나게 얻어맞았다.

 야 죄수번호 4004 3100! 니네 거기까지 안 해? 당장 안 멈춰? 뒤늦게 몰려오는 교도관의 목소리가 쨍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귓가에서 웅웅 울렸다. 씨발. 시끄러워. 아랑곳 않고 전영중 위에서 올라탄 성준수가 영중의 콧잔등을 주먹으로 빡 내리쳤다. 본인도 이미 대가리 깨진 채로 피 줄줄 흘리면서. 끝내 교도관들한테 붙잡혀 사이좋게 철창에 얼굴 눌린 채 제압될 때까지 둘은 서로를 노려봤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S#1 검찰청 창살은 쇠철창살

 

 검사가 되어 버린 강동원을 아시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하나같이 극적이고 관심이 싹 돌게 만드는 키워드는 오롯이 한 사람을 가리키는 지칭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제4부 소속 성준수 검사. 대부분의 남성 검사 평균 나이가 40살을 훌쩍 넘는 검사 판 시장을 생각해 보면 32세는 꽤 매력 있는 영계 검사다. 등용된 지 몇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는 유명했다.

 

 왜?

 1) 얼굴

 EBC 쪽에서 출연 요청이 왔는데 단기성 법정 교육 프로그램 찍는대. 전문가 의견 송출하실 분이 필요하댄다. 가장 얼굴 괜찮은 애 뽑아서 방송 출연시켜. 때마침 그때 성준수가 막 등용된 신삥 검사였다. 얼굴 좋은데 막내이기까지. 방송이 송출되고 나서 인스타그램에 #최근얼굴로화제된EBC방송게스트검사ㄷㄷ 하며 나노 단위로 캡처된 성준수가 알음알음 돌았다.

 2) 성깔

 법정 스타일은 검사마다 다양하다. 빙글빙글 악역 영애 화법 구사하며 상대 변론을 늪처럼 끌고 들어가기. 시간이 깡패라고 노련하게 변호사 말에 시의 적절하게 반론하기. 역전재판도 나오는 검사가 시시각각 바뀌듯이 사람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패션 성향만큼이나 다양했다. 성준수 법정 뛰는 모습을 1열에서 관람한 부서 선배는 그의 변론 스타일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응 이거 하나 없다고 판결 개망해 돌아와. 차라리 집행유예 받을 망정 무죄는 절대 안 돼. 증거물 하나하나 물어 뜯는 모습 보고 솔직히 광견병 걸린 개 같았다 증언했다.

 3) 지론

 발화점 낮은 성질을 보유하고 있지만 성준수는 딱 이거 하나만큼은 지켰다. 선빵필패. 아무리 피고인 이 새끼가 심문 중 개빡치게 해도 참는다. 일반인이면 몰라도 법조인이면 씨발 선빵 치는 순간 커리어 다 좆되는 거다. 그는 기를 쓰며 합법적인 폭력을 구사해 냈다. 선빵은 안 친다. 대신 치는 순간 이씹새끼가니가먼저쳤으니정당방위다…. 맞는 말이었다. 책은 흉기로 판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요긴히 사용했다.

앞서 말했던 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바로 적잖아 자의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유명세는 기실 자타의를 불문하고 하늘이 돕고 우주가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타의 또한 존재할 것이다.

 

 4) 전영중

ㄴ 얜 뭐죠?

 ㄴ 유료분을 스포일러 하는 행위는 제네바 협약에 의해 전쟁범죄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5) 은퇴

 엥? 32살에 벌써 은퇴? 구라겠지. 그러나 진실이다. 성준수는 사람들의 박수를 우수수 받으며 떠났다. 아니 사실 박수가 아니라 카메라 플래시 우수수 받으며 떠났다. 자그마치 ‘검사 성 모씨’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모자이크 된 얼굴과 함께 32세의 마지막 날 살인죄로 15년 형 판결을 받고 감방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방송에도 출연했던 검사가 통수 존나 까며 살인죄로 기소당했을 때 여론 반응이 어땠던가. 말 그대로 뒤집어졌었다. 대한민국 검찰계네?! 뭐라고요!? 이 개검사가 진짜! 지금 당장 출동하겠습니다! 그렇게 성준수는 내다 갇힌 거다. 이미 유죄로 낙인 찍힌 자에게 기회는 몇 없었으니까. 그마저도 이제 옛 일이 됐다. 반짝 들끓는 여론의 특징은 유통 기한이 길지 않다는 것이었으므로. 허나 부디 앞서 상영한 것을 전부 잊어라. 우리의 주인공은 왕년에 존나 쌔빠지게 범죄자 후려 넣던 성준수 검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의 주인공이 누구야?

 

 

S#2 31번 방 전하

 

 31번 방 전하 (명)

 서울동부구치소 31번 방에 수감된 죄수를 뜻함. 물론 처음 구치소에 방문한 사람이라면 31번 방을 찾긴커녕 방향 잡기도 힘들 것이다. 슬기로운 감방 생활을 위해 31번 방 전하를 알아볼 생활의 길잡이를 제시하겠다.

1. 얼굴이 가장 하얀 사람을 찾을 것 2. 제일 잘생긴 사람을 찾을 것 3. 단연 성격 좆 같은 사람을 찾을 것

 

예문) 위계 질서 하나 없이 엉망진창이던 교도소를 바로잡은 것은 31번 방 전하이다. 31번 방 전하는 입소한 지 일주일에 주먹으로 권력을 평정했다. 그 뒤로 수 차례 도전이 이어졌으나 권력은 무탈히 이어져 왔다. 유독 새하얀 피부며 다소 날렵해 보이는 체형에 간과하기 쉽지만 대한민국 일 티어 신장 및 체형임을 기억해라.

예문 2) 주먹으로 왕조실록 작성하기를 몇 개월. 기어코 31번 방 전하는 교도관과도 안면을 텄다. 몇 년 뛴 검사 경력이 빛을 크게 발했다. 듣기로는 땅 상속 문제로 골치 떼던 소장을 도왔다고 했다. 이후로는 종종 생기던 도전마저 뚝 끊겼다. 도리어 하나둘 잘 보이기 바빴다. 어느샌가부터 담배를 조달받았기 때문이다. 전하 만세!

예문 3) 31번 방 전하의 긍휼은 평민들에게도 친히 베풀어졌다. 대신 아무 거지 같은 새끼나 돕는 건 아니었다. 아니 씹 이건 니 잘못이잖아. 뭘 일찍 처나가려 그래. 안 꺼져? 죗값 치러라. 판결은 그의 잣대로 내렸고 그게 곧 정의였다. 검사 시절엔 팔자에도 없던 인맥이 여럿 생겼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저희 상도물산 이제 손 싹 씻고 광어랑 방어 회 팔고 있는데 혹시 댁으로 좀 보내드릴까요…. 등등등.

2022.04.30 수록

 

 

“성준수. 내가 아무리 너 이뻐한다지만 이 정도로 맞짱 까면 곤란해. 알지.”

“죄송합니다.”

“아이잇 죄송하라는 게 아니라. 야 니가 도와준 게 몇인데 어?”

“제 잘못 맞는데요 뭐.”

“그냥 담부터 싸우지 말라고. 응? 할 수 있지?”

“네. 죄송합니다.”

“거기 너도. 준수 봐서 봐주는 줄 알아 새끼야.”

“네. 죄송합니다.”

 

 준수 뭐 얘랑 아는 사이야? 얘 왜 이리 니 못 봐서 안달 났냐? 아는 사이 아니에요. 준수야 지금 우리인연을 무시하는 거야? 그럼 게이야? 그런가 보죠. 아니 준수야 이거 허위사실 유포죄 적용해야 할 것 같은데. 조용히 해 이 게이 새끼야. 준수 괴롭히지 말고. 뭔 들어오자마자 쌈박질이야 이 새끼야. 아… 죄송합니다.

 

 4. 4번 방 도련님과 지랄 시작 하는 사람을 찾을 것…….

 2023. 12.23 갱신

 

 

/

 

 

 술이나 담배 따위를 하나도 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진정한 광인이다. 뭐 이런 말 들어 본 적 있는가. 성준수는 그 주장에 대한 살아 있는 근거였다. 어쩌다 회식 자리에서 술 한두 번 입에 넣기는 해도 자발적으로 술 먹자며 사람을 부르진 않았다. 점심 시간에 같은 사무실 내 사람들이랑 식사 다 같이 하고도 이어지는 식후땡 자리에서는 깔끔히 거절 의사를 내보였다. 선배님 군대 다녀온 사람 맞죠? 진짜 대단하시네. 니가 약해 빠진 거다. 끝내 판결 땅땅 내려진 날 밤. 준수는 그제서야 대략 이해가 갔다. 아, 사람들이 이럴 때 술병을 손에 쥐고…… 담배를 입에 무는 거라고. 씨발. 한 번 피워 보고 들어갈 걸 그랬나….

 

 자. 여기서 제공하는 메타적 나레이션.

 성준수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서울 내 검찰청 소재 검사, ‘살인죄’ 기소돼… 대한민국 검찰계 어디까지 가는가

 첫 신고자였으나 피하지 못한 의혹
피해자는 검사의 담당 피의자… 심문 과정 중 격해진 것으로 추정
“대한민국 검찰, 보다 엄중한 등용 과정 필요해”

서울 검찰청에 소재하던 모 검사가 심문하던 피의자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경찰에 따르면 해당 피의자는 MW 그룹이 진행하는 학조2구역 재개발에 대한 반대 시위 중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대부분의 심문에 묵비권으로 응답하여 검찰 측이 곤란하게끔 행동했다.

 모 검사와 피의자 간에 기나긴 공방이 이어졌으며, 시종일관 묵묵부답으로 대응하는 피의자에 검사가 이른바 폭력 심문을 진행, 강도가 심화되며 사망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수사하였다.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이신환은 검찰 내에서 유감스러운 사건이 일어난 점에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앞으로 청렴결백한 대한민국 검찰의 관례를 위해 더욱이 힘쓰겠음을 밝혔다.

 

 

 감방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완벽히 적응해 일짱 자리 차지한 것과 별개로 성준수는 꾸준히 제 죄질을 부정했다. 재심 신청서. 성명 성준수. 겉옷 주머니 안에 사직서 곱게 끼고 다닌다는 직장인들처럼 죄수복 주머니 안에 재심서 가지런히 넣고 다녔다. 전직 검사. 재심 요청. 아시다시피 좆같은 성질머리. 그런데 감옥에서 별 탈 없이 다구리를 안 당했다고? 당하긴 했다. 이게 누구야? 우리 성 검사님 아니십니까. 당할 뻔했다. 대개 성준수 시점에서 눈높이가 낮았다. 덩치야 좀 후달려도 성준수는 근육 밀도 백으로 때려 박은 사람이니 여타 문신 돼지들과는 차이가 있다. 수로 어쩔 수 없이 살짝 발리긴 했으나 초등학교 시절 육 학년 형아 제패한 감이 아직 빛을 발했다. 비록 피 뚝뚝 흘리며 쥐어 터져도 이겼다는 이야기다. 아니 씨발 무슨 검사 새끼가 깡패 새끼마냥…. 니 뭐랬냐?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성준수 감옥 일생은 제법 평탄한 편이다. 이번에 검사 들어온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동물원마냥 온갖 관심과 시선 다 받은 첫날이야 좀 빡셌겠지만 친히 서열 정리하고 길이 폈다. 자진해서 햄햄 부르는 놈도 생겼다. 물리적 권력을 내쥐니 정치적 권력 잡는 것도 금방이었고. 확실히 요즘 땅값이 금값이다. 상속 문제 하나 봐 줬다고 소장은 거의 준수를 만지면 복 들어오는 돌멩이쯤으로 취급했다. 혹은 만나면 까까 물려주고 싶은 옆집 애. 어이구 우리 준수. 담배 하나 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말했듯 가끔 같은 죄수들 모아 꼬꼬무 찍기도 했다. 깐깐하고 원칙적으로는 가히 검사장을 능가하는 성준수를 감안하면 실제 성준수 은혜 입고 나가는 놈들은 얼마 안 됐지만. 그래도 갱생해서 꼬박꼬박 편지 써 오는 거 보면 좀 프린세스 메이커 한 기분이라 나쁘진 않았다. 살다 살다 별걸 다 하네 씨팔….

 

 요약하자면 성준수 감옥 일대기에서 재심 신청서가 매일같이 씹히는 것만 빼면 여직 큰 고난과 역경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작은 고난과 역경은 생길 때마다 성준수가 몸소 쥐어 패고 배로 갚아줬다. 근본적으로 장소가 교도소라는 것만 빼면 오히려 검사 시절보다 인맥이 훨씬 다채로워졌다. 와 준수 햄 친구 억수로 많네요. 어. 근데 이거 다 깜빵 있던 형님들 같은디. 어 맞는데? … 그럼 현실 친구는 없으신… 아니 물론 이 형님들도 현실 친구긴 하 아아아악 아파요 햄!

 그래서 성준수를 줄곧 지켜봐 온 (이하 자진해서 햄햄 부르는 놈) 기땡땡 군이 감히 한마디 얹기로는. 솔직히.

 전영중이 성준수 태평성대에 있어 유일한 고난과 역경이지 않을까…. 물론 준수 햄이 자리 뺏길 위인은 아이지만요. 걍 정신적 스트레스 측면에서. 너무 빡쳐 하길래. 헉. 전영중이 누구냐고요? 아직 제대로 안 나왔나. 유, 유료분을 스포일러 하는 행위는 제네바 협약에 전쟁범죄로 규정돼 있어가…….

 

 

S#3 4번 방 도련님

 

“준수 무슨 생각 해?”

“니 죽이는 생각.”

“준수는 정말 자나 깨나 내 생각뿐이네…. 부끄럽다.”

“하 씨발…. 그냥 닥쳐라.”

“얼굴 자주 보니까 좋지?”

“좆네.”

“나도.”

 

 됐고 입 벌려 봐. 응? 어 이제 다물어. 개 다루는 손길마냥 투박하게 준수가 영중의 벌어진 턱을 다시 닫았다. 입이 곱게 다물린다. 사이에 담배 끼운 채로. 그러고선 성준수도 따라 담배 필터 물며 똑 하고 캡슐 깨는 소리를 냈다. 하하 준수 진짜 골초 다 됐네……. 어쩌라고. 이것도 소장한테? 어. 괜히 전하라는 말 도는 게 아니구나. 그게 뭔데? 모르면 됐어. 나도 최근에 들은 거라. 참고로 난 도련님이래. 씨발 우웩. 담배 맛 떨어지게 토 나오는 소리 하지 마라.

이제서야 전영중 세 글자가 재등장한다.

 성준수가 왕좌 잡고 권력 이끌기를 일 년. 딱 그 해 겨울에 전영중이 서울동부구치소에 입소한다. 그리고 입소 첫 날에 성준수와 거하게 주먹다짐 한다. 이틀 뒤 화해한다. 사흘 뒤 또 싸운다. 그래 놓고 일주일 뒤 점심을 같이 먹어 교도관들을 존나 황당하게 만든다. 아니 준수야. 너 쟤 싫어하지 않았냐. 예 싫어하는데요. 뭔데 그럼? 저 새끼 친구 없어서 그래요. 그리고 추후 일 년여를 성준수와 붙어다니기 시작한다. 대략 365+@일을 같이 다니면서 영중과 준수는 천이백이십사 번 말싸움 했고 오백육 번 몸싸움 했고 사백삼십일 번 화해했다. 형식적인 화해는 대개 치고받고 싸울 때나 해서 숫자가 저렇다. 그럼에도 몸싸움 횟수보다 화해 횟수가 더 적다는 점에서 그 둘이 얼마나 싸웠는지는 알 만했다. 하하 준수야 네가 먼저 팼으면 적어도 사과는 너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시비는 씨발아 니가 처걸었잖아.

 그래서 전영중은 누구야?

 앞서 말한 사항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전영중과 성준수가 구면이라는 사실 하나다. 어, 거기 잠깐. 전영중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농구 원툴 인생 롱런 때리다 같이 코트 뛰던 소꿉친구의 전학에 빨간 눈 뜨고 누가 계속 농구 하냐는 마음을 가진 남고딩이 아니다. 모르겠으면 검색을 해라. 기실 한국인이라면 구글 들어가서 네이버 검색하는 게 본능 아니겠는가. 빨강 파랑 못지않게 애국의 색인 초록색 검색 엔진에다가 전영중 세 글자 한 번 쳐보도록 해라. 전영중. 기업인. 소속 제신 건설 (이사) 검은고양이보호재단 (이사장) 이외 깔끔한 공백란. 가족 아버지 전원석, 어머니 이현주, 이외 누나 전세연 형 전인욱…….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다자녀 집안을 자랑하는 제신 그룹 전 씨 가문의 막내.

성준수의 유명세 이유 중 네 번째를 상기해라.

 

4) 전영중

ㄴ 얜 뭐죠?

 

 바로 성준수 검사의 질기고 큰 악연 되시겠다.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의 막내 도련님이 피고인으로 기소된 사건을 대체 누가 맡고 싶을까. 더군다나고등학생 때부터 여러 번 재판 넘어갈 뻔한 상습범을. 개정되지도 않은 재판이나 이미 판결은 예상된 것이었다. 무죄. 당연히 검사 입장에서는 필패의 재판. 그러니 전영중의 재판은 늘 검찰청에서 폭탄 돌리기로 이어졌다. 검찰 총장이 검사장에게 패스했다. 검사장은 차장 검사에게 넘겼다. 차장 검사는 부장 검사. 부장 검사는 부부장 검사. 부부장 검사는 평검사. 평검사까지 다다르게 되면 이제 등용 순서에다가 사법고시 통과 날짜까지 따지게 되는 것이다. 아주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래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 네가 처음 검사 딱지 단 해에 전영중이 기소되지 않았다면 너 정말 운 좋은 거라고. 결국 필패해야만 하는 전영중의 재판은 그 해 평검사 중 가장 막내가 도맡게 되었으니까.

 성준수도 처음엔 그렇게 전영중을 떨이 처리당했다. 마찬가지로 등용 순서에다 사법고시 통과 날짜에다 생일까지 따졌다. 성준수의 생일은 로맨틱하게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보다 더 생일이 늦을 확률은 365분의 7이었다. 하하 씨발. 예. 까짓거 한번 해보죠….

 문제는 지라고 나간 판을 성준수가 꾸역꾸역 기소유예를 해냈다는 것이다. 본디 성준수는 유교 정신 하나는 투철하여 상명하복만큼은 깍듯하게 지켰으나…… 아니 씨발 이건 유죄잖아. 그런데 적당히 져 오라고? 이유가 고작 대기업 막내 아들이라는 이유로? 말이 되냐? 대한민국 검찰 이 미친 것들아. 그렇게 악쓰고 재판에 덤볐으나 기껏 받은 게 기소유예라니. 씨발. 집행유예도 아니고……. 그러나 성준수는 재판 끝나자마자 청 복귀 명령 듣고 개털렸다. 너 미쳤어?! 거기가 어떤 재판인 줄 알고 지금 기소유예를 받아 와? 죄송합니다. 상사 명령이 우습지 아주? 아닙니다. 들들볶이고 존나 까였다. 그 길로 첫 해부터 좌천당해 저 멀리 부산까지 내려갈 뻔했는데…… 취소가 됐다. 존나 뭐지. 처음 신삥 단 해에 검사장한테 두 번이나 불려 가는 평검사 업적을 달성했다. 너 좌천 안 가도 돼. 예?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다. 예 뭡니까. 어 그게.

 

“또 뵙네요. 성준수 검사님.”

“하…….”

“두 번 봤는데 말 놓을까?”

“아니.”

“네.”

 

 4) 전영중

 

“아니 이 새끼 또 지랄병 도졌네 씨발…….”

“준수야.”

“입 닥쳐.”

“잘 지냈어?”

“아니.”

“못 지냈어? 왜?”

“니 때문에.”

 

 담당 일진 검사

 

“준수 안녕. 오랜만이야.”

“안녕은 씹 좆 까.”

“여기서?”

“씨발. 이 개새끼 공연음란에 성희롱 추가해라.”

“이 집 서비스가 후하네.”

 

 앞으로 전영중 사건은 네가 다 맡아라.

 

“이번엔 또 뭐냐?”

“도박죄.”

“하…. 상습도박죄 아니고?”

“여태까진 안 걸렸어.”

“방금 발언 녹음한 놈 없냐? 상습으로 고쳐 올리게.”

“농담이야.”

“이 개씨발이.”

 

 이렇게 무려 오 년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 미친놈 스위치를 눌렀던 건지 기억도 안 난다. 전영중은 조금 한가해질 만하면 사고를 쳤고, 그러면 전영중 상대로 한 반듯하고 정갈한 원고인의 고소장이 꼭 성준수 앞으로 왔고, 성준수는 이 꽉 악물며 이 씨발 새끼 한 번 중얼거린 뒤 기소장을 작성했다. 그리고 호출했다. 야 이 개새끼야. 준수 안녕. 좆 까. 언제 철들래? 어? 미운 정도 정이라고 준수는 슬슬 영중의 전화번호도 외우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공일공 공공사공 삼일공공 씨발아……. 여기까지가 전생. 둘이 커플룩마냥 죄수복 나눠 입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그 뒤로는 아시다시피 영중이 구치소 들어온 이후로 존나 싸웠다.

 물론 아무리 뒤끝 없고 신체 건강하고 안구 시력 이상 없는 성준수라 해도 처음부터 전영중을 아빠의 마음으로 포용한 건 아니었다. 첫날 시원하게 싸우고 일주일 뒤에는 점심 같이 먹긴 했어도 딱 적당히 안면 있는 사이 그뿐이었다는 거다. 아니 근데. 근데 씨발.

 

“니 왜 자꾸 따라다니냐.”

“뭐가 준수야.”

“어. 뭐 애새끼야? 콩고물 좇냐? 아니 씹 뭔 틈만 나면 자꾸 이리로 오는데.”

“준수야…. 이 자리가 햇빛 들잖아. 자기가 명당 차지해 놓고 왜 오냐는 건 또 뭐야. 준수 양아치야?”

“하 이 씨발이……. 야, 야. 놔 봐. 저 새끼 오늘 죽이게.”

 

 전영중 이 씹새끼가 친한 척인지 미친인지 존나 들러붙어서…….

 

“준수 오늘도 재심 신청서 쓰는 중?”

“어 꺼져.”

“네 담당 판사 요즘 개빡쳤어 준수야. 넣어도 한 달 뒤에 넣어.”

“좆 까. 니 뭐 되냐?”

“아까 전화로 들은 거야. 고오급 정보.”

“하……. 누구한테.”

“그건 비밀. 아무튼 준수야 난 말해 줬다?”

 

 진짜 존나 귀찮게 구는데 딴에 가끔은 간식 문 채 뭐 마려운 개마냥 주위를 빨빨거리고.

 

“이거 준수 거야? 어디 보자. 재심 요청 사유.”

“뭐야 씨발. 야, 내놔.”

“그래서 정말 간곡히 재심을 부탁드리는 바이며 음…….”

“아니 읽지 마 씹새야. 안 내놔?”

“음……. 준수야 내가 봤을 때는 네가 재심 요청서를 쓸 때가 아닌 것 같아. 하나로 우리 아이 국어 마스터. 이거라든가……. 논리적으로 쓰고 조리 있게 말해요. 이건 어때?”

“씨발아. 안 꺼져?”

 

 생각해 보면 그렇게 엄청 씹새끼는 아니었던 것 같을 즘에 개씹새끼처럼 굴어 댄다. 아 진심 죽일까. 좀 무난한 관계가 될 즘에 개좆같이 굴고. 바닥으로 치달아 정말 죽일까 싶을 즘에 답지 않게 동그랗게 굴어서 말문 막히게 한다. 그런 기묘한 유대 관계가 일 년여쯤 유효했다.

 다만 본론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전영중과 성준수의 관계 개선을 주제로 금쪽 상담소를 열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회상해 온 과거는 다 잊으시고. 둘이 사이좋게 감방 갇힌 주제에 담배나 빨고 있는 현재에 집중해라.

 여기까지 시청한 관람객이라면 필연적으로 궁금해지는 것이다.

 

“니 그래서 왜 들어왔는지 아직 얘기 안 할 거냐.”

“상습도박이라니까?”

“아니 씨발아. 그 얘기가 아니잖아.”

“그럼 뭐가?”

“이 새끼 그냥 말할 생각이 없네.”

“하하.”

 

 자그마치 제신 그룹 막내 도련님이나 되는 귀한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 왜 들어오게 됐을까? 무엇이 이상한지 모르겠다면 그간 전영중과 성준수가 쌓아 올린 역사를 되새기면 된다. 기소유예를 시작으로 무죄무죄무죄무죄무죄무죄……. 더해서 전영중의 이전 재판 이력도 같이 떠올리면 완전히 납득 간다.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무죄무죄무죄무죄무죄…….

 그러니까 여태 무죄로 만들 능력이 출중했는데 왜 이제 와서 돌연 죄가 인정되냐는 말이다. 것도 상습도박이라. 이전 영중이 도박죄로 죄질 인정받은 적은 없다는 걸 감안하면…… 어떻게 상대 검사가 여러 번 행한 증거를 발굴한 모양이다. 이런 씨발. 그럴 리가 없는데? 존나 안 나왔는데? 전영중 저 씹새끼는 결벽증과 강박증의 집합체라고 씨발……. 어떻게 했냐. 그러나 영중은 줄곧 해명이나 설명 하나 없이 대답을 뭉갤 따름이었다. 하하 준수야. 너 이제 검사 아닌 건 알고 있는 거지? 같은 죄수끼리 죄 따져서 뭐 할 건데? 뭐 있는 게 뻔한 얼굴로 빙글빙글 웃으며 성준수 속을 긁었다. 그럼 보통 머잖아 주먹질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퍽! 씨발 영중아 우리 이 레퍼토리 언제 졸업하냐 개새끼야.

 

“빵 갔단 소식 듣고 우리 준수 심심할까 봐 놀러 온 거지.”

“좆 까라.”

“진짜야.”

“개구라 한마디만 더 하면 또 존나 패고 싶을 것 같으니까 닥쳐.”

“응.”

 

 영중이 눈치 한 번 살피더니 얌전히 입을 다문다. 웬일로 순순한 모습에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 100%였던 걸 91%로 하향 조정했다. 매번 물어볼 때마다 신경이나 긁으며 대답 피하는 전영중도 전영중이지만 잊을 만하면 뜬금없이 주제 꺼내는 성준수도 성준수였다. 뭐든 다 막는 방패랑 뭐든 다 뚫는 창이 따로 없었다. 웃긴 건 서로 어지간히 불편하게 굴면서 이상하게 거의 매일매일을 붙어 있었다. 성준수가 서울동부구치소를 주먹과 폭력 그리고 아가리를 곁들여 평정하지만 않았어도 게이 새끼 소문이 분명 돌았을 거다. 하 이 씹새. 빵 들어온 이후로 말 섞는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으면서 씨발 하여간 더럽게 말 안 처들어요…. 오늘도 ‘귀한 분이 어째서 이런 누추한 곳에….’ 이슈는 텄다. 준수가 제 머리칼 벅벅 흐트러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꺼져. 준수야 같이 가.

 

 

 

S#4 눈 가리고 아웅

 

 세상에 완전 범죄란 없다. 진실은 언제나 밝혀진다. 전영중의 완전 범죄가 성준수에게 낱낱이 밝혀지는 데에는 딱 전영중 입소 이래 1년 4주 3일 1시간 가량이 소요됐다. 여기서 완전 범죄란 예상하다시피 영중의 개구라를 의미한다. 여러 번 도박한 거 걸려서 여기 들어온 거라는 뻔한 개구라. 으응 서울 한복판에 하우스 돌았다니까 경찰이 좀 빡쳤나 봐. 삼 년 이내 징역 중에서 한 이 년 오 개월 받았으면 좀 빡세게 받은 편이야? 어 존나. 그러나 단 한 글자도 신뢰하지 않았던 이야기.

 

 

 제신 그룹 급부상한 전인욱 부회장… 곧 결정될 ‘후계자’ 염두 뒀나

지난 해 내부 기업 구조 조정으로 한 걸음 물러나 정비 태세를 취하던 제신 그룹이 올해 다시 눈에 띄게 부상하고 있다. 최근 상승한 기업 가치 및 주가에 대해서 차남 전인욱 부회장이 가장 큰 공신으로 손꼽히고 있다. 전인욱 부회장은 제신 그룹 산하 사업에도 관여하기 시작했으며, 지난 달에는 건설 계열사에 대해 큰 관심을 드러내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아직까지 제신 그룹 회장 전원석은 제1후계자 및 기타 유산 분배에 대해 아무런 언질이 없었으나, 근 5년 안에 결정할 것이라 밝혀 둔 바가 있다. 현재 제신 그룹 내 후계 구도는 장녀 전세연, 차남 전인욱, 막내 전영중으로 거론된다.

 

 

 무려 감방 권력 틀어쥔 왕에게만 주어진다는 신문 기사다. 막 아침에 발행된 따끈따끈한 일보를 교도소장이 친히 성준수에게 갖다 준 그거였다. 오늘이라고 뭐 특별한 날일 리 있나. 딱 봐도 콘텐츠 존나 없겠지만 성준수는 어쨌든 억울하게 누명 씌인 입장에서 열심히 재심 요청 러브레터를 써야 했다. 사회나 정치 흐름에 기민하게 눈치채고 파악해야 했다는 소리다. 괜히 검사에서 정치인 가는 놈들이 많이 생기는 게 아니었다. 아이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진작 입안의 혀처럼 굴었지. 물론 다시 돌아갔어도 성준수가 그렇게 싹싹하게 굴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간 전영중 담당 일진을 맡아 온 짬밥이 어련히 존재했다. 안 봐도 1048p 유튜브 프리미엄이다. 아이 씨발. 이 새끼 도박 처한 게 아니라 그냥……. 그냥 후계 싸움 밀린 거잖아? 진짜 등신 새끼인가? 이렇게 대가리 빈 놈한테 여태 내가 졌다고? 진심 지랄하지 마. 안 되겠다 이 씹새 오늘 죽이고 천국 가야겠다. 같은 방 쓰는 어린 놈한테 대강 신문 기사 뭉치 던진 준수가 말을 잇는다. 점심 알아서 먹어라. 선약 있어. 네? 넵. 그… 4번 방 쓰시는 분이요? 전영중? 어. 네에엡. …. 햄요. 근데 이거 데이트예요? 아니 씹. 겠냐? 생각 좀 하고 말해 씨발놈아. 넵 정말 죄송합니다…. 잉잉잉.

 

*

 

“전영중.”

“웬일로 준수가 날 먼저 찾지? 나 당장 내일 사과 나무라도 심어야 해?”

“니가 그런 교양 지식도 아냐?”

“그럼 준수야. 나 대학 다닐 때 교양 평균 학점 4.0이었어.”

“하……. 존나 안 물어봤어.”

 

 가만 냅두면 또 아가리 모터 돌리며 지랄 시작할 게 뻔했다. 벌써부터 대가리에서 피로감이 치고 올라온다. 준수가 짜증스레 인상 구기며 전영중 앞으로 신문 뭉치 던진다. 기껏 성준수 명령 듣고 하나하나 흐트러진 신문 정리한 기 모군이 들으면 참으로도 유감스러울 일이었다. 이게 뭔데 준수야. 읽어. 3 페이지 상단 기사.

 

“니 이야기니까.”

“뭐?”

“읽고 변명할 시간 4분 준다.”

“아니 뭐라고 준수야?”

“시작. 이백사십.”

“준수야 너야말로 설명할 시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백삼십구.”

“준수 진짜 양아치야?”

 

 이백삼십팔. 아무런 대꾸 없이 시종일관 숫자 세기로 대응한다. 알겠다고 준수야 제발. 결국 영중이 먹던 밥도 내려놓고 순순히 신문을 펼쳐 든다. 차락거리며 종이 넘기는 소리가 한두 번 일었다. 굳이 콕 집어 주지 않아도 전영중은 발견했을 것이다. 짙고 뚜렷한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것을 준수가 목격했으니까. 어떻게 나오나 보자. 뜨끈한 순댓국에 밥 한 숟가락 기깔나게 말아 씹으며 성준수가 삐딱하게 전영중을 응시한다. 이게 전직 검사인지 조폭인지 의심될 정도다. 성준수가 예상한 전영중의 반응에는 딱 세 가지 유형 정도가 있었는데. 첫 번째 지랄, 두 번째 부정, 세 번째….

 

“그래서 뭐?”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네 이 씨발 개뻔한 새끼……. 대략 예상한 반응은 다음과 같다. 하하 준수야 그래서 어쩌라고? 이게 나랑 왜 상관 있는데? 와 준수 아는 척 진짜 좆된다. 누가 보면 우리 친구인 줄 알겠어……. 존나 개빡치게 시치미 떼기. 그리고 전영중은 존나 친절하게도 성준수 예상 그대로의 절차를 밟아 줬다. 하하 준수야 그래서 어쩌라고? 이게 나랑 왜 상관 있는데? 와 준수 아는 척 진짜 좆된다. 우리 친구야? (: 인간관계에 문제가 없을 때 입 밖에 내지 않는 대사)

 

“아니 씹. 이 새끼는 어떻게 한결같이 개씹새끼일 수 있지….”

“준수 혹시 자기소개 중?”

“씨발아. 여기 떡하니 니네 아버지 그룹 적혀 있잖아. 장난 까냐? 모르는 척 조지네 미친 새끼.”

“모르는 척이 아니라 모르는 거라니까.”

“딱 봐도 파이싸움 말아먹고 좆된 건데 뭐가 등신아. 니 그냥 가오 빠진다고 말 안 한 거지. 형한테 밀린 거 쪽팔린다고.”

 

 맞네 이 새끼. 와 씨바. 아니 니는 뭐 그걸 밀리고 앉아 있냐 멍청아. 어휴 씹…. 어떤 간 큰 새끼가 처넣었나 했더니. 어정쩡하게 부정하는 투에 도리어 확신 얻었는지 준수가 줄기차게 말 툭툭 뱉는다. 니 뭐 어쩌려고. 안 먹어? 저러도록 두게? 애초에 니 힘이면 나갈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럼 빨리 나가 등신아. 존나 얼타고 지랄…. 다른 사람이라면 감옥에서 혼자 뻘짓을 하든 정신 수양을 하든 좆도 상관없었을 텐데 그래도 미운 정도 정이라고. 답지 않게 길게 부추긴다.

 그리고 묵묵히 듣던 영중이 마침내 입을 연다. 아……. 왜 이렇게까지 말하나 했더니. 준수 그게 필요한 거구나. 뭐… 따까리? 꼬붕? 뭐? 맞지? 준수는 형량 채우려면 한참 남았고, 재심은 가능성도 없고…. 야 씨발. 나 내보내서 바깥 세상 소식 들려줄 사람 만들려는 거 아니야? 아니 씹 전영중. 그래 이해해. 나라도 그렇게 정당방위 하나 없이 살인죄 인정받았는데 재심 요청은 몇 번이고 거절당하면 복장 터질 것 같거든…. 앞으로도 가능성이 깜깜하고. 야. 교도소 내에서 어떻게 해 보기엔 한계가 있으니까. 조력자가 있으면 좋겠지. 일단 준수는 친구가 없으니까. 야 씨발아. 왜? 말 다 했냐? 아직? 아니? 말 끝내고 이빨 악물어. 개새끼야.

 퍽! 어떻게 달라지는 것 없이 또 이 흐름이다. 식판 안 엎은 게 용했다. 아니 이 씹새는 씨발 나가는 거 도와주려 해도 말을 이렇게 좆같이 하냐. 말 한마디면 천 냥의 빚 다 갚는다더니 이 새끼는 천 냥의 빚 갚을 능력을 가지고도 성준수에게는 이천 냥의 빚을 만든다. 진심 죽여 버리고 싶다. 영중이라고 성질 굽힐 것 없이 식탁을 엎어 젖혔다. 아니 이 씨발 새끼가 지금 지는 다 처먹었다고 상을 엎어? 잽싸게 피한 준수가 쏟아지던 식판 붙잡고 전영중 대가리로 던졌다. 깡! 마지막까지 먹지 않고 남겨 뒀던 고기만두가 처참히 문드러진다. 그 틈을 타 전영중 위로 올라탔다. 이 씨발 새끼야. 또 뭐가 문젠데. 말을 처하라고. 좆같이 니만 아는 거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고. 말 하나하나 씹어 뱉으며 준수가 영중의 뺨을 주먹으로 내리깠다. 전영중은 처맞는 건 얌전히 맞아 주면서도 억세게 성준수 목을 틀어 쥐었다. 산소 구멍이 틀어막히며 시야가 미묘하게 일그러질 때까지 전영중을 팼다. 결국 이번에도 싸움 끝마치는 건 교도관들이다. 4004 3100. 또 너네냐? 제발 이 새끼들아.

 

 

 

 전영중과 싸운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그리고 이 개새끼는 줄곧 성준수를 쌩까고 있다. 씨발. 화해하면 다시 캐물을까 봐 무서운가 보지? 준수가 흉흉한 기색으로 31번 방 창살을 노려본다. 먼저 가 말아. 이 존나 애새끼…….

 덕분에 근 일주일 간 눈칫밥 내내 말아먹은 기상호가 낑낑대다 조심스레 말을 튼다. 햄. 전영중이랑 아직 화해 몬 했죠. 아니. 안 한 거다. 넵. 안 했죠. 어 근데. 음. 아뇨. 걍 쪼매… 들은 게 있어가. 뭔데? 햄 귀 쫌 줘 봐요. 이윽고 상호가 준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인다. 그리고 처맞는다. 아이 씨발 기분 개더럽네. 아니 햄……. 이거 쫌 억까 아입니까…. 어디서 들었는데. 니 그거 맞냐? 뭔 개헛소문 들은 거 아니고? 햄요……. 내 진짜 알아주는 정보통이거든요. 생생 정보통. 생생 정보통은 지랄. 브로커지 등신아. 어라. 내 와 갑자기 혼나노…. 존나 안 믿기네. 대체 다른 새끼들은 뭘 믿고 니 정보를 사 갔냐? 돈이 남아도나? 햄 이거 진짜 억깝니더.

 저녁이 영 입에 넘어가질 않는다. 아이 씨발 그리고 전영중 그 새끼가 여기서 상 엎은 게 아직도 생각나서. 아니 씹. 지가 뭐 카카오톡 오리 새끼인 줄 아나?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삼시 세 끼 밥 먹을 때마다 상기하고 열받았다. 딴에 눈에 안 띄어 보겠다고 멀찍이 떨어져 먹는 것까지 한 대 패고 싶었다. 생각이 복잡해지니 좀 걷고 싶어져서 따라오는 것들도 다 물리고 급식실을 나섰다. 일찍 나오니 복도가 꽤 한산하고 적막하다. 이런저런 상념 정리하기엔 제법 괜찮았다.

 그리고 깜박. 뭐야? 나 방금 눈 깜박였나? 깜박……. 아니, 복도 전등이 불현듯 점멸한다. 힘없이 불빛이 꺼질 때마다 복도가 완전히 어둠에 잦아든다. 저녁이니까. 깜박. 마침내 세 번. 씨발 전등 상태 왜 이래? 삐딱한 생각이 속내를 타고 오를 쯤에.

 푹. 살가죽 튿어지는 소리가 바로 등뒤에서 들리며 주위가 환해진다. 가물거리던 빛이 고정된다. 빛 부재에 정신 팔려서 연하게 느껴졌던 인기척이 선명해진다. 돌아봐서 상황 파악하기도 전에 귓가를 때리는 익숙한 목소리. 나지막하게 듣기 좋은 듯 굵은 음성. 근 일 년 간 매일같이 질리도록 들은. 그런데 늘 여유 있게 빙글거리던 투와 달리 오늘은 좀 극적으로 소리 지른다. 누가?

 

“교도관!”

 

 전영중이.

 완전히 뒤를 돌아본다. 옆은 쌩초면 관상의 키 작은 남자 죄수다. 온몸을 발발 떨고, 눈을 희번득하게 뜨며… 영중의 손아귀에 제압당했으나 여전히 몸부림치는 꼴의. 씨발 뭐야? 이 새끼가 왜 있어? 바로 뒤에서 남정네 둘이 껴안고 있는 걸 보면 아무리 성준수라도 황당하기 마련이다. 뭐 하냐? 그러나 영중은 대꾸 없이 교도관만 수어 번 불렀다. 그제서야 주변 사위 살필 여부가 되어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영중 한쪽 손이 새빨갛다. 비릿한 향내가 코끝을 찌른다. 더 까지 않아도 무수한 검사 경력 하에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혈액이다. 아니 씨발… 피? 하도 전영중 손이 큼지막하여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 새끼 뭘 쥐고 있다. 뭘 쥐고 있다고. 준수가 가까이 상체 숙여 확인할 찰나.

 

“성준수, 씨발, 제발 꺼져…….”

“아니 씨발 뭐냐니까.”

 

 영중이 사납게 뇌까린다. 욕이나 된통 얻어먹는다. 그렇지만 성준수가 쿠사리 하나로 제 뜻 굽힐 사람이던가. 전영중의 드문 쌍욕이나 죽일 듯 노려보는 눈깔은 아랑곳 않고 친히 확인한다. 손가락 사이 어렴풋이 부신 안광이 눈에 들어온다. 안광. 이래 봬도 검사 짬밥 n년따리. 바로 알아본다. 날붙이. 칼이다. 정확히는 칼을 쥔 건 남성이었고 영중이 그걸 쌩으로 감싸 잡은 거다. 미친 새끼. 씨발. 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대가리를 한 대 처맞은 듯한 감각이 뒤통수부터 선연하다. 전영중이 아니었다면 향했을 날붙이의 방향. 기막힌 타이밍으로 깜박대던 불빛. 덕분에 인지하기 어려웠던 인기척. 모든 게 우연인가? 아니지. 내가 일찍 나올 것까지 예상할 수가 있을 리가 없는데. 아니 씨발. 다 제치고 애초에.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왜. 전영중이 내지른 사자후 덕분에 금방 교도관 튀어오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린다. 슬슬 밥 시간도 중간을 넘어섰기 때문에 배 채운 한량들이 하나둘 나와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조금 멍하다. 제대로 뇌로 인식되기까지 버퍼링이 걸린 모양이다. 방금 찔릴 뻔한 건가. 칼에. 등뒤에서. 와 씨발 검사 시절에도 칼빵 한 번 안 맞았는데.

 습격 시도. 전영중. 칼. 처음 보는 얼굴. 검사? 하지만 이제 와서? 단순 입막음일 가능성이 크다. 필요성을 느꼈나? 씨발. 정보가 부족해. MW 그룹. 피의자 김억수. 정당방위를 권유했던 부장 검사 정재완. 검사장 이신환. 제신 그룹 부회장 전인욱. 여기서부터? 씹. 아니야. 이놈은 맥락이 아예 다르잖아. 이윽고 떠오르는 기상호의 한마디. 햄. 전영중이요. 지금 일부러 안 나가고 뻐팅기는 거라는 말이 도는디. 조심해요. 

 뒤늦게 여럿 몰려온 교도관들이 피범벅 된 칼을 회수하며 영중과 남자를 완전히 떼어낸다. 근데 묘하게 찝찝한 느낌이 씨바알…. 얌전히 제압된 둘이 줄줄 연행된다. 야 전영중! 바로 앞임에도 영중이 구태여 못 들은 척 묵묵부답 앞으로만 걸음 옮긴다. 어차피 준수도 곧이다. 죄수 번호 3100. 너도 상황 증언해라. 따라와.

 그래서 지금 영중과 준수가 나란히 묶인 채 대기실에 앉아 있는 것이다. 원흉이 된 놈은 이미 심문 중이라서. 남은 게 딱 둘이다. 야 너네 쳐다보지 좀 마라. 둘이 각별한 거 아는데 쫌 씨발. 대화 나누지 말고. 엄밀히 말하자면 성준수만이 일방적으로 전영중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긴 했지만……. 이윽고 호명에 따라 영중이 교도관 손에 붙잡혀 이끌린다. 방금 들어간 남자와 교차한다. 기세 좋게 칼 들고 달려들던 건 어디 갔는지 남자는 준수 시선마저 필사적으로 피했다. 근데 저 씹새가……. 오로지 피해자이자 관람객 입장이던 성준수가 증언에서 크게 시간 잡아먹히진 않았다. 갑자기 형광등이 저기해서… 오는 거 못 알아차렸어요. 한 세 번쯤 끊겼을 때 갑자기 뒤에서 전영, 하, 4004 그 새끼가…….

 진작 어둑해진 복도를 다시 걷고 31번 방으로 돌아올 때까지 전영중과 대화할 틈 하나 없었다. 철창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기상호 새끼는 왜 없냐 씹.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싶더니 텅 비었다. 왜 없지? 얘도 따로 불려 갔나? 어찌 됐든 분명한 건 무엇을 묻든 대답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거다. 더 캐고 싶었는데. 전영중. 똥개도 씨발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이질적으로 빈 이부자리를 바라보다 신경질적으로 눈꺼풀을 내리 닫는다.

오늘 하루가 절묘하고 기묘하게 돌아간다. 그 씨발 새끼야 살인 미수니 말할 것 없이 형벌 추가일 테지만…. 원한? 왜? 사주? 어디서? 마치 끼워 맞춘 것처럼. 과연 오늘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있는가? 아니 어쩌면 오늘 하루뿐만이 아니라 이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걸지도 모른다. 물론 단순 우연일지도 모른다. 허나 상상치 못한 것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아, 씨발. 너무 많은 걸 모른다. 약간의 회의감이 몰려온다. 진짜 다 찢어 죽이고 싶다. 캄캄한 천장 올려다보며 짧게 저주한다.

이어 필연적으로 상기한다. 조심해요. 전영중이 빵 들어온 이래로 햄한테 쭉 친한 척했고… 아이참. 묘하게 사람 인상이 쎄해 부려서…….

 전영중…….

 얜 씨발 진짜 뭐지? 오늘 일만 따지자면 생명의 은인. 지난 일주일로 평가하면 등신 같은 머저리. 지난 한 달로 환산하면 멍청이. 지난 일 년으로 판단하면 그리고 통틀어 정의하자면…… 한결같이 뭐 하는 개새끼인지 모르겠다. 하 씨발. 자기 전에 생각하는 게 전영중이라니. 이렇게 좆같은 일도 없을 거다. 유독 밤이 길고 차다. 아무래도 일찍 잠들기는 글러먹었다.

 그리고 다음날. 성준수에게 칼을 휘두른 남자는 심문 후 자신의 호실에서 자살한 채 발견된다.

 

컷!

 

 

*

 

 

<검사외전>
평균 4.31 · 2023 · 한국 영화

줄거리
얼굴능력성깔 뭣 하나 뒤지지 않고 자의 및 타의로 유명한 검사 성준수. 취조 중이던 피의자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꼼짝없이 살인 누명을 쓰게 된 성준수는 결국 15년 형을 받고 수감된다. 그리고 1년 후, 검사 시절 끈질긴 악연이던 도련님 전영중을 구치소에서 마주한다. 이 새낀 뭐죠? 그런데 어째 생각보다 얌전하다. 악연이 아니라 악우로 그들의 관계가 변화해 갈쯤,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사건이 벌어진다….

 

무료 체험 시청이 끝났습니다. 지금 바로 네이버 시리즈에서 <검사외전>을 구매해 보세요!

빵준영화합작로고_흰색.png
검사외전_익명.p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