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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준수는 생각했다. 이 새끼는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이딴 짓을 벌이는 거냐고. 사실 자신이 전생에 큰 죄를 지어서 이번 생에 이 새끼를 만나게 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눈앞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이 방긋방긋 웃고 있는 낯짝을 보고 있자니 골이 울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진짜로 혈압이 올라서 쓰러지기 직전인 걸 수도 있고. 한참을 한숨만 내쉬면서 마른세수를 하던 성준수는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들었다. 내가 오늘 저 새끼 죽이고 이 삶을 청산하겠다. 문제의 근원, 전영중은 그런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두 손을 들어보이며 최대한 자신의 무해함을 어필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건 역효과를 불렀고, 전영중 또한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성준수는 10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끓어오르는 열을 간신히 식히고 입을 열었다.

 

“너 미쳤냐?”

“아니? 준수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한테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나오라는 새끼한테 무슨 말을 하냐? 여기가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전영중은 아무런 연락도 없이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와서는 성준수에게 자기를 책임지라고 하는 중이었다. 성준수는 다시 오르는 열을 억누르기 위해 없는 인내심까지 끌어올렸다. 전영중은 진짜 정신 나간 새끼가 맞다. 이틀 전에 폭탄 같은 고백을 던지고 하루 잠수하더니 지금 여기 눈앞에 나타난 것을 보면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아직 자신이 답을 주지 않은 탓에 그걸 듣겠다고 찾아온 건 설마 아니겠지. 성준수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자신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지상고 단톡방에 온갖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새로 태어난 판다가 보고 싶다는 이유로 다 같이 수도권에 있는 놀이동산에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등장한 불청객 덕분에 혼자 부산에 남아 있는 성준수를 위해 막내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 중이었다. 쌓여있는 연락을 대충 확인한 성준수는 다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전영중을 향해 눈을 흘겼다.

 

“중간에 딴 소리 하면 진짜 죽여버린다.”

 

 예정에도 없던 데이트의 시작이었다. 첫날 전영중은 생각보다 고분고분하게 성준수가 가자는 대로 잘 따라다녔다. 중간에 시비를 걸긴 했지만 크게 불만을 표하지 않고 따라오는 모습에 성준수는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로 뭘 하고 싶어서 온 건지 알 수 없는 탓에. 대답을 종용하는 것도, 무슨 목표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친구와 노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되레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나니 알 수 없는 불안감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이게 더 좋은 일이고 정상인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참으로 어려웠다. 사실 답을 알고 있는 걸지도 몰랐지만 성준수는 그걸 외면하기로 했다.

 이튿날도 크게 소음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평범하게 아침에 눈을 떠서 교대로 외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와 대충 아침을 챙겨 먹고, 산책 겸 조깅을 한 뒤에 다시 점심을 챙겨 먹고. 그러다 맛있어 보이는 가게가 있으면 디저트까지 챙겨 먹은 다음에 유명한 곳들을 가보고, 성준수가 직접 지내면서 좋았던 장소도 함께 가보고. 그쯤 되니 알 수 있었다. 전영중은 그저 자신과 함께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얼굴에서 드러나는 감정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 새끼 진짜로 나 좋아하네. 저녁은 일부러 광안리 근처에서 밥을 먹고 어둑해진 밤에 모래사장 위를 함께 발맞춰 걸었다.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없어 둘 사이에는 적막이 퍼졌지만 주변이 시끄러웠던 덕분에 크게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한참을 해안가를 따라 걸었나 끝에 도달하고 나서야 성준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시 돌아갈까.”

 

 그 말에 전영중은 군말 없이 다시 발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몇 걸음 걷고 나니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전영중이 고개를 돌렸다. 제자리에 서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성준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성준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건 전영중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둘은 서로를 가장 모르는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그걸 전영중도 알고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어도 알 수가 없다니, 심장 어딘가 아리는 것만 같았다. 전영중이 무어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네 고백 내가 계속 존나게 생각을 해봤거든.”

“…그래서?”

“나도 너 좋아해. 찝찝한 기분의 이유를 알았다. 결론이 났을 때 바로 답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말을 끝으로 성준수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넋이 나가 있는 전영중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를 품에 안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움찔거리는 몸뚱이가 참 웃겼다. 전영중은 이게 꿈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성준수를 마주 안으면 느껴지는 온기에 이게 현실이라는 감각이 돌아와 눈물을 쏟았다. 한참을 껴안은 상태로 있으면 겨우 눈물을 그친 전영중이 고개를 들었다.

 

“나 지금 꿈 속에 있는 거 아니지?”

“아니니까 정신 좀 차려.”

“우리 내일은 해운대 가자. 거기도 가보고 싶어.”

 

 말 그대로의 데이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정신을 차린 전영중은 낯선 풍경 속에서 눈을 떴다. 분명 자신은 성준수와 함께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 안에서 고백에 대한 답을 듣고 기분 좋게 잠들었던 것 같은데 왠 로프에 매달려 있었다. 굉장한 소음에 고개를 들면 로프와 이어진 구조 헬기가 보였고 구조대가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다. 파도 소리에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대충 상황은 파악이 됐다. 그리고 시선을 다시 앞으로 옮기면 보이면 성준수의 얼굴에 전영중은 눈을 크게 떴다.

 

“너 잠깐 기절해서 내가 얼마나 식겁했는지 알아?”

“아니, 준수야. 그게 무슨 소리야?”

“씨발, 파도는 존나 높게 치는데 네가 요트 바닥에 머리 박고 기절했다고. 기억 하나도 안 나냐?”

 

 전영중은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제 내가 준수랑 요트를 탔지? 아직 얼 타고 있는 전영중을 향해 성준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야, 그래도 너 정신 차려서 다행이다. 마지막 인사는 할 수 있어서.”

“이건 또 무슨 소리인데. 준수야, 아까부터 왜. 설마 우리 준수 연기도 못하면서 몰래 카메라 찍고 있는 거 아니지?”

 

 성준수는 대꾸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전영중도 따라 시선을 올리자 그의 손에 들린 날붙이가 반짝였다. 순식간에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전영중이 소리쳤다.

 

“네가 그런다고 무슨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알아?! 개죽음밖에 안 되거든? 준수야, 누가 그딴 식으로 살려 달라 그랬어? 차라리 내 줄을 끊어. 제발, 좀!”

 

 발 아래로 보이는 바다에 빠지면 죽을 게 분명했다. 저 높은 파도 속에서 맨몸으로 빠지는 건 자살하는 거랑 다를 게 뭔가. 그걸 성준수도 알 텐데 도대체 왜. 전영중은 어쩐지 성준수가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고. 자신과 연결된 로프를 가만히 바라보던 성준수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저 웃었다. 많은 감정을 억누른 웃음이었다.

 

“영중아, 이 줄 망가져서 우리 둘 다 못 구한대.”

“개소리하지 말라 그래. 그딴 게 어디 있어? 성준수 정신 잡아.”

“야, 너는 살아라. 내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내 생각하지 마.”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짐작한 전영중이 성준수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성준수의 줄이 끊어져 떨어지는 게 먼저였다. 전영중의 눈에 담긴 그의 모습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리고 눈에서 눈물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성준수의 마지막 말은 전영중에게 닿지 못하고.

 

 전영중은 성준수가 바다와 부딪혀 파도에 삼켜지는 순간 눈을 떴다.

 

*

 

“오늘 이런 꿈을 꾸었어.”

“미친 개꿈이네. 잊어.”

 

 왜 갑자기 아침에 꾸었던 꿈이 생각났는지. 본래 지금쯤 해운대를 거닐고 있었을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전영중은 성준수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은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너는 변한 게 없구나. 새삼스레 전영중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에 네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두려움이 눈에 담긴 전영중과 달리 성준수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붙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떨림에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기로 했다. 결국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었기에.

 

“야, 전영중.”

“응, 준수야.”

 

 둘은 말없이 동시에 앞을 바라봤고, 같은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 시선을 맞췄다. 아주 짧은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먼저 입을 연 건 전영중이었다.

 

“나 후회 안 해, 준수야.”

“알아, 새끼야. 그냥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다.”

“성준수가 생각을 할 줄도 알았어? 이런 순간이 오니까 의외의 모습도 보고 새롭네.”

 

 끝까지 말 존나 많네, 씹. 작게 읊조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전영중이 웃으면서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원래 오늘의 계획이 뭐였지. 같이 바닷가를 걷고, 맛있는 것을 먹고. 그러다가 기차 시간이 다가오면 아쉬움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새 표를 구하는 상황까지 상상했던 것 같은데. 모든 게 어그러진 순간이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전영중이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준수야, 사랑해.”

“그래. 나도 사랑한다.”

 

 두 사람은 다시 저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해일은 지척까지 와 있었다. 구조 헬기가 다시 온다고 해도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소란스러운 주변과 달리 두 사람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눈을 감았다.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의식이 멀어지는 순간까지도 잡은 손만큼은 놓지 않았다. 전하지 못한 말은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짧고도 긴 영원한 안녕이었다.

 

‘우리 다음 생에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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