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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뽕쟁이X끼가 어디까지 밟는거야?!?! 니X끼 잡히면 뒤졌다 진짜!”

 

지상 경찰서의 전화기 너머로 고래고래 욕을 쏟아부으며 운전하는 성준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부산에 자리한 지상 경찰서. 그곳의 마약단속반으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성준수가 좌천된 게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점마... 원래 지가 있던 곳까지 가겄네...”

 

성준수와 동갑인 진재유 형사가 종이컵 끄트머리를 질겅질겅 뜯으며 중얼거렸다. 본래 입이 험하고 성질머리가 불같이 사나운 준수가 너무 과열되면 옆에서 누군가가 뜯어말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리고 이분은 그 ‘누군가’ 되시겠다.

 

준수 햄, 지금 몇 시간째 저러고 있는 거죠? 신입 형사 중 한 명인 기상호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웅얼거리자 옆에서 세 시간 넘었을 때부터 안 세기 시작했음. 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문화도시 서울. 서울특별시입니다.”

 

성준수의 네비게이션에서 기어이 안내음이 흘러나오자 모두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렇다. 그는 지금 부산에서부터 미친 듯이 밟아대 서울에 도착한 것이다. 어떤 겁대가리를 상실한 마약 운반책 하나가 발각되자마자 차에 올라타 도망쳤기 때문이다.

 

“오백 미터 앞 에서 주정차구간 단속...”

 

성준수가 한껏 속도를 높였다. 평상시엔 신호도 나름 잘 지켜왔지만 코앞에 놈이 있었다. 어느새 두 차량은 도심에 들어섰다. 운반책 자식은 혼자 여기저기를 헤집고다니며 성준수의 속도 박박 긁어댔다. 그러던 중 골목길에서 유턴을 틀었고...

 

“야, 야, 야, 야!!!!”

 

준수가 고함을 치며 급하게 차를 틀었지만, 하마터면 사고를 낼 뻔해 시간이 지연됐다. 그렇게 골목에 들어서자,

 

“빠아아아아아아아앙!!!!!!! 빠아아아아앙!!!! 빵!!! 빵!!! 빵!!!! 빠빵!”

 

텅 비어있었다. 거기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빠지는 양갈래까지 있다. 그걸 본 성준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제대로 X됐다. 제 분을 이기지 못한 그가 그대로 핸들에 머리를 들이받아 클락슨 소리와 그에 묻히지 않은 욕설이 골목에 울려퍼졌다.

 

“야!!!! 시끄러워!!!!”

 

성난 동네 주민의 목소리와 함께.

 

 

극한직업

w. 규남

 

 

“니들 이대로면 옷 벗어야 돼.”

 

김다은이 잠시 주춤하다가 수줍게 셔츠 윗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거 말고 이 똘갱이새끼야!”

 

이현성 반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김다은이 다시 셔츠 단추를 주섬주섬 여몄다.

 

“하아... 임마들은 그렇다 치고, 준수 니는 우짤 생각인데? 여서 또 좌천당할기가?”

 

“아닙니다.”

 

“이번 건 공친 거, 약쟁이 새끼 하나 못 잡았다고 이미 전국에 소문 쫙~ 났다.”

 

“...”

 

현성이 파일철의 모서리로 제 머리를 긁다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거 우리가 혼자 못 묵는다.”

 

“예?”

 

부산 항구에서 마약 밀수. 그리고 그 운반책이 마약을 서울 강남으로 퍼 나른다. 여태까지의 정황들과 운반책의 인상착의 등으로 파악된 건 여기까지였다. 이현성은 지금 이 수사를 운반책이 마약을 공급하는 장소로 추정되는 서울 강남지부와 함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마침 딱 니가 일하던 그짝이다. 준수 니 원중 경찰서 강력반 아들 알제?”

 

우리가 다 그짝으로 갈 순 없어도 금마들이 독식하는 꼴은 못 본다. 이현성은 어차피 밥그릇을 나누기로 한 거, 원중 쪽이 전부 자신들의 공으로 돌리지 않도록 성준수를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거리가 있다 보니 지상 쪽과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수사를 돕고, 겸사겸사 공도 세우라는 뜻이었다.

 

“이럴 수 있는 겁니까?”

 

“인마, 지금 느그들 까딱하면 다 나가리인데 못 할 건 또 어뎃노.”

 

타당한 말이었다. 지금은 뭘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당장 물에 빠졌는데 손에 뭐가 잡히든 일단 잡아야 했다.

 

“가봐라.”

 

그리하여 성준수는 다시 원중 경찰서의 문턱을 밟게 되었다.

 

***

 

“브리핑 시작한다.”

 

불 꺼진 방 안에서 빔프로젝터가 빛을 내며 돌아갔다. 수사팀장인 지국민이 앞에 섰다. 슬라이드를 넘기며 그가 요주인물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장거리 마약 운반책, 통칭 ‘김 사장’. 이게, 그...”

 

모두가 은근슬쩍 한구석에 앉아 살기를 내뿜는 성준수의 눈치를 흘끔 봤다. 그가 형형한 눈빛을 띄는 것 외에는 별말 하지 않자 지국민이 말을 이었다.

 

“부산...에서 튄 놈. 자기 조직에서 떨어져 나간 후로 서울에 있는 어떤 조직에 뽕을 대주고 있는데, 그게 어느 조직인지를 밝혀내서 족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짜준 조대로 이동해. 녀석의 동향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접선지를 파악해서 현장에서 거래 현장을 잡는다. 그럼 해산!”

 

방의 불이 켜지고, 모두가 일어나 착착 움직였다. 원중은 이런 곳이었지. 지상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것을 새삼 실감하며 준수가 미간을 짚었다. 이렇게까지 똥폼 잡는 건 됐지만 그 녀석들은 언제 이렇게 굴려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 준수~”

 

“하아...”

 

“부산 공기 맡으니까 좋았어? 우리는 여기서 범인 잡는다고 뺑뺑이 치는 동안 우리 준수는 기동대로 팀도 옮겼나 봐? 혼자 부산에서 서울까지 레이싱 쇼도 하고 말이야.”

 

전영중이었다. 그럴 줄은 알았지만, 저 돼지 너구리 자식은 간만에 만나더니 냅다 시비질이다. 그는 준수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해온 소꿉친구이자 경찰대에서 원중 경찰서까지 함께 들어온 동기이자 ‘옛’ 파트너였다.

 

“이 새낀 왜 또 X랄이야... 야, 야, 빨리 현장 가 봐야 돼.”

 

인상을 팍 구긴 준수가 주차장으로 향하자 영중은 졸졸 따라가며 속을 박박 긁었다. 화룡정점으로 준수가 운전석의 문을 열었을 때 영중이 그 안으로 쏙 들어가 안전띠를 맸다.

 

“너한테 운전대 맡겼다가 또 서울에서 부산까지 추격전 벌일까 봐 무섭다, 준수야!”

 

“이 X바거가...”

 

두 사람이 많은 설득(오른쪽 주먹)과 대화(왼쪽 주먹)을 나누며 한동안 실랑이(머리 끄댕이 잡고 흔들기)를 하다가 결국 준수가 조수석에 앉았다. 부드럽게 차가 출발하며 그들이 지정된 장소로 이동했다. 그들은 무한정 차에서 대기하기 대신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주요 장소를 감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들어간 곳은,

 

“우리 준수는 이거 완~전 많이 먹어봤겠다. 물려서 못 먹는 거 아니지?”

 

하필이면 원조 돼지국밥집이었다. 부산으로 좌천된 뒤로 사사건건 속을 긁던 그에게 커다란 미끼까지 던져준 셈이었다.

 

“그래 X나 많이 처먹었다 새꺄.”

 

“이야, 이상한 사투리까지 옮아오더니 완전 부산 사람 다 됐네.”

 

“왜, 다데기도 풀어줘? 원조의 맛이나 보여줄까?”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동안 국밥의 양은 점점 줄어만 갔다. 한 그릇을 비우고 늘어져라 투닥거리다가 또 다음 그릇을 시키고, 또 다음을, 그리고 또 다음을...

 

“이러다 돼지 될 것 같다...”

 

“니는 이미 돼지고...”

 

“누가 이렇게 바른 말 고운 말을 쓰지?”

 

어릴 때야 국밥 다섯 그릇 정도는 일도 아니었지만, 성인이 되고서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세 그릇째를 넘어가자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몰랐다. 그저 기계적으로 입에 퍼넣으며 창밖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와중에도 투닥임은 멈추지 않았다. 성준수는 진지하게 숟가락으로 영중의 이마를 한 대 칠까 생각했지만 지금 수저를 놨다간 더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손을 내려야만 했다.

 

그렇게 삼 일이 지났고, 김 사장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국밥이 점점 물려가기 시작했다. 남자라면 국밥만 먹고 살 수 있다고 큰소리 떵떵치던 지국민이 생각난 전영중은 갑자기 급발진을 하며 분노의 숟가락질을 했다.

 

“야, 조금씩 먹어. 니 또 국밥 리필하고 싶냐?”

 

“왜 이 근처에 다른 식당은 없는 거지? 하루는 국밥 먹고 하루는 다른 거 먹어도 되잖아. 아니, 많은 거 바라지 않아. 무슨 국밥집이 해장국도 안 팔아? 요즘 시대에 돼지국밥 원툴이 말이 되냐고.”

 

“주는 대로 처먹어. 나 군대에 있을 땐...”

 

“군대는 준수 혼자 다녀왔어? 우리 같은 부대였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성준수도 슬슬 물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먹던 맑은 국밥이 이제는 시뻘건 국물이 되어 돼지국밥인지 깍두기국물다데기국밥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곧 한계였다. 솔직히 국물을 보기만 해도 메슥거렸다. 영중이 왱알거리는 동안 준수가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덥썩 영중의 손을 잡았다.

 

“뭐, 뭐뭐뭐, 뭐야?!”

 

“김 사장 떴다.”

 

“근데 왜 손을, 아니, 뭐?”

 

영중이 다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정말 창문 너머로 김 사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한 남성이 보였다. 남자는 김 사장에게 봉지를 받아들고 주변을 흘끔대더니 국밥집 바로 건너편의 건물로 들어갔다.

 

“월척이네,”

 

준수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여기서 더 잠복하면 녀석의 조직까지 한 방에 먹을 수 있었다. 이대로 근처에 감시도 달고, 어떤 핑계를 대서 아닌 척 건물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빠르게 계산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장사 여기서 접어서요.”

 

“예?”

 

영중과 준수가 동시에 뒤돌아보았다. 말을 건 이는 국밥집 사장이었다. 여태까지 계산할 때를 빼면 말을 섞을 일은 없었고, 24시 연중무휴래서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접는단다.

 

“사장님, 여기 안 쉬잖아요.”

 

“아예 장사를 접기로 해서요.”

 

“왜요?!”

 

“왜긴요, 장사가 안되니까 그렇지.”

 

준수의 눈동자가 강하게 요동쳤다. 드디어 집에 가서 발 뻗고 잠도 자고, 국밥 말고 다른 것도 먹어보나 했더니 갑자기 가게를 닫는다고 한다. 그럼 저희는 어떡해요 사장님. 사장님??? 전영중이 옆에서 사장에게 매달리는 동안 성준수는 얼빠진 채로 턱을 괴고 그 꼴을 보고 있었다. 이제 명예도 회복하고, 지상놈들 전부 말뚝 박아주고 김 사장 그 자식을 조져주나 했더니 그냥 자신만 조져지게 생겼다. 성준수의 이상이 뚝 끊기는 순간이었다. 사람 한 명 묻고 온 얼굴로 일어난 그는 비틀거리며 사장에게 다가가더니 카운터를 쾅! 하고 내리쳤다.

 

“준, 준수야?”

 

“사장님...”

 

“예...?”

 

“얼마면 돼요?”

 

“예?”

 

“얼마에 살 수 있냐고, 이 가게.”

 

기상호가 들었다면 광공대사라고 했을 말을 서슴없이 내뱉은 성준수는 정말로 눈이 맛이 가있었다.

 

“준수 돈은 어떻게...”

 

“적금 깬다.”

 

전영중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의 그는 무슨 말을 해도 말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그, 그래도 현실적인 방법이,”

 

“야, 영중아.”

 

준수의 고개가 살벌하게 삐걱거리며 돌아갔다. 전영중은 작게 움찔했다.

 

“돈 보태 줄 거냐?”

 

“준수야 나는 결혼자금인데...”

 

“너 결혼 할 거야? 누구랑?”

 

“...아니, 그게,”

 

눈 뜨고 코 베인다더니 전영중의 적금도 순식간에 날아갔다. 하지만 성준수는 상쾌해 보였다. 아무래도 그간의 모욕과 불안과 빡침으로 인해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어딘가 돌아있던 듯했다.

 

“친구 좋은 게 뭐냐.”

 

“친구? 남 혼삿길 막아놓고 친구우우?”

 

“여차하면 내가 책임질게.”

 

“...”

 

그러니까 어떻게 책임진단 말인가? 전영중, 의문의 2패. 아무래도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것에 가까웠다.

 

“성준수진심진짜최악.”

 

하지만 도파민이 하늘을 찌른 준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뭐 근데 남자 둘이 갑자기 가게를 차린다니... 맨날 죽치고 앉아있길래 백수인줄 알았더니 돈도 있고... 이, 관계가 그냥 친구라기엔 쓰읍, 수상한데...”

 

갑자기 사장의 말이 산통을 깼다. 아, 맞다. 아직 있었다.

 

“혹시 이거 막, 영화처럼 잠복근무하는 형ㅅ...”

 

“저희가 사실 부부라서요.”

 

뜬금없는 준수의 폭탄 발언에 사장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 그래서... 그렇게... 아, 어메리칸!”

 

“예? 예, 그렇죠, 아임파인땡큐앤유.”

 

“어휴 신혼이었는데 그걸 몰랐네, 아하하하. 어쩐지 꼭 붙어있더라.”

 

“제 허니가 수줍음이 많아서요.”

 

웃는 얼굴 그대로 영중이 딱딱하게 굳었다. 성준수가 대답하며 제 허리에 팔을 둘렀기 때문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며 입을 틀어막는 방법이야 흔했지만 설마 성준수가 이런 수를 둘 줄은 몰랐다. 전영중은 지금 울고 싶은 건 갖은 애칭과 스킨십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은 건지 모를 성준수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진심진짜최악이었다.

 

 

***

 

 

“사장님, 저희 돼지국밥 두 개요.”

 

“안 돼요, 아직 영업 준비 중이라서.”

 

벌써 다섯 번째 손님을 내보냈다. 하염없이 김 사장과 접촉한 이가 들어간 건물을 지켜보고 있는데 생긴 일이었다. 문이 딸랑하고 열릴 때마다 두 사람 다 펄쩍 튀어 오른 것은 덤이다. 아니, 사장님. 장사 안돼서 접는다면서요. 속으로 툴툴대는 동안이었다.

 

“야, 타겟! 타겟 건물 밖으로 나왔다! 다른 놈도 있어!”

 

별안 창문을 쳐다보던 성준수가 급하게 외치자 전영중도 창가로 달려갔다. 드디어 며칠 만에 그 건물에서 사람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어째... 방향이...”

 

“어어, 다 치워! 이쪽으로 온다!”

 

두 사람이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의 망원경이며 지도며 무전기를 쓸어버렸다. 곧이어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타겟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여기 국밥 두 개요.”

 

영중과 준수가 딱딱하게 굳었다. 이거, 어떡하면 좋지. 국밥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그들을 돌려보내면 이 가게를 사버린 의미가 없어진다. 적금 두 개와 가장 중요한 단서가 쌩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네, 국밥 둘이요.”

 

먼저 정신을 차린 영중이 웃으며 대답하고는 주방으로 성준수를 끌고 들어갔다. 성준수가 그 손에 끌려가다가 소곤댔다.

 

“...야, 너 국밥 끓일 줄 아냐?”

 

“알겠냐고!”

 

전영중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준수는 부산에서 남이 끓여주는 재첩국만 먹어서 모르나 본데,”

 

“재첩국은 끓일 줄 아냐?”

 

“정신 차리라고!”

 

빼액 소리지른 영중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웅얼댔다.

 

“...끓일 수 있을지도...?”

 

***

 

영중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재첩국을 내왔다. 아니, 사실 재첩국도 아니었다. 갑자기 서울 한복판 슈퍼에서 민물조개인 재첩을 구해올 수 있을 리가 없어 대충 해감 되어있는 아무 조개나 사서 끓인 조갯국이었다. 하지만 나름 칼칼하고 뽀얀 국물과 동동 떠 있는 부추가 신뢰도를 올렸다.

 

“어때?”

 

영중이 한 숟갈 떠서 준수에게 먹인 후 빤히 바라봤다.

 

“야, 근데 여기 원래 원조 돼지국밥집이잖아.”

 

“그렇지...?”

 

준수가 벌컥 냉장고를 열고 말릴 새도 없이 냄비에 뭔가를 더 털어 넣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소금이라도 더 치나보다 하고 따라갔던 영중이 펄쩍 뛰었다. 하지만 이미 냄비 안에서 팔팔 끓고 있던 것은 돼지 부속... 그리고 뭔 가래떡 한 덩이도 들어있었다.

 

“나름 구색은 맞춰야지. 그리고 부산 놈들은 물떡? 그런 것도 먹더라.”

 

영중은 그대로 기절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까먹고 있었다. 성준수가 요리의 망금술사라는 걸. 준수를 한쪽으로 밀어 넣고 허겁지겁 다시 끓이려는데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거 아직이에요?”

 

“...나가요~.”

 

영중이 질끈 눈을 감고 냄비의 국을 뚝배기 두 개에 나눠 담았다. 와중에 성준수는 착실하게 쟁반에 공깃밥도 담아갔다.

 

“국밥 두 그릇 나왔습니다.”

 

“...형님, 조갯국 냄새가 나는데요.”

 

“이 떡은 뭐야? 여기 돼지국밥집 아냐?”

 

카운터에서 고개를 길게 뻗고 지켜보던 영중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대로 놓치면 안 되는데. 여기서 깽판이라도 벌어졌다간 모든 게 다 허사로 돌아간다.

 

“손님,”

 

그때 준수가 입을 열었다. 신이시여, 제발 성준수가 주는 대로 처먹으라고 하지 않게 해주세요. 영중이 눈을 딱 감고 빌었다.

 

“이건 원조 재첩...물떡....돼지국밥?입니다.”

 

“방금 돼지국밥? 이러지 않았어요?”

 

“아닌데요. 아무튼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그는 준벅준벅 주방으로 들어갔다. 영중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성준수 미친놈아!!!! 하지만 준수는 태연한 얼굴이었고, 놈들은 이미 국에 밥을 말고 있었다. 아, 진짜 모르겠다... 영중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천장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한 놈이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아, 씨X!”

 

네, 네, 경찰 출동합니다, 출동해요. 손님, 여기서 이렇게 난동을 부리시면 미란다 원칙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생각을 하던 영중의 눈이 다음 말에 번쩍 뜨였다.

 

“X나 맛있어!”

 

“맛있다고?”

 

전영중이 허겁지겁 냄비로 뛰어가 남아있는 국물을 한 숟갈 퍼서 먹어봤다. 그리고는 의문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조개의 깔끔함이 돼지 냄새를 잡아주면서도 돼지의 기름기가 청양고추의 칼칼함을 농후하게 변화시켰다. 여기에 제 미뢰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걸 다 먹고 물떡을 한 입 먹으면 이 육수를 머금은 떡이 얼마나 고소하고 쫀득할지.

 

“와, 미쳤다...”

 

“나 요리 잘한다니까.”

 

응, 준수야 X소리 하지마... 영중이 웃으며 속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이지 인간의 최악의 실수가 빚은 최상의 결과물이었다. 어둠 속을 깨우는 한 줄기 빛, 성공은 실수의 어머니, 아무튼 그런 수식어들이 어울리는 작품이었으니까.

 

국밥집에 나타난 이들은 조직의 말단이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터라 윗선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번 그들이 이곳의 칭찬을 하면 언젠간 조직원들이 밥을 먹으러 찾아오거나 배달을 시킬 것이다. 그때 한 명이라도 주요인물을 마주치면 그들의 소속을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때까지 대기만 잘 타면 됐다.

 

그랬는데,

 

분명 그랬는데...

 

“아 XX! 진짜 더럽게 되는 일이 없네!”

 

국밥집이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아니, 아무리 맛있대도 무슨 국밥 몇 그릇 팔았다고 이렇게 대박이 날 일인가?

 

“여기 재물밥 두 개요!”

 

심지어는 약칭까지 생겼다. 재물밥이라는 말이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져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끌어모아 버렸다.

 

“안 되겠다. 일단 사람을 좀 빼야겠어. 가격 올리자, 준수야.”

 

“한 그릇에 삼만 원?”

 

“오케이.”

 

그날 국밥은 만삼천 원에서 삼만 원으로 올랐다. 이제 바가지라고 사람들이 끊기겠지. 그런데 다음날은 오픈런이 열렸다.

 

“아니, 무슨 국밥에 금이라도 발랐나? 뭐 이렇게 비싸.”

 

“접수했습니다.”

 

“네? 뭐를요?”

 

다음날 국밥은 오만 원으로 뛰었고 금가루가 뿌려 나왔다. 그런데 이럴 수가. 국밥켓팅이라는 말도 나오면서 사람들이 두 배로 늘었다. 간만에 성준수가 기상호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그랬다. 그쪽은 상황 어때? 상호의 말에 따르면 부산 쪽 조직은 얼추 윤곽이 잡힌 듯했다. 갈매기 파가 김 사장과 접촉하는 것을 잡아냈다고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서울 쪽 조직이었다. 같은 날 덮쳐야 한쪽이 튀는 일을 막을 수 있으니 동태를 파악하며 대기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수사를 진척시킨 지상 녀석들이 기특했다.

 

“햄, 근데 대체 그 국밥 맛이 어떻길래...”

 

디지털 시대라더니 언제 또 부산까지 소식이 들어갔나 몰랐다. 성준수는 이마를 짚었다.

 

“야, 제대로 일 안 해?”

 

“아아앙.”

 

“니가 지금 정신 팔고 있을 때야? 새끼가 빠져 가지곤... 안녕하십니까, 이것은 재첩국인가 물떡인가, 돼지 국밥인가. 부산 원조 재첩물떡돼지국밥입니다. 지금은 이용하시는 고객님이 많아 통화가..”

 

“햄..?”

 

“준수야, 우리 그냥 경찰 때려치고 장사나 할까...?”

 

“...”


“햄, 와 대답을 안 해요...?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거 아니죠? 저희 경찰이라니까요..?”

 

“야, 나 바쁘다. 나중에 다시 걸어. 네, 손님. 재물밥 세 개요. 여기 재물밥 세 개!”

 

“해애앰...?!”

 

뚝. 전화를 끊어버린 준수는 국밥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게의 외관이 허름해서라도 사람들이 끊길 줄 알았는데 이곳에 온 사람들은 이런 곳이 진정한 국밥 맛집이라며 좋아했다. 사람 속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재물밥 집은 이제 정신없이 입소문을 탔다. 그리고 그때, 중요한 전화가 왔다.

 

“여기 반대편 건물인데, 재물밥 한 그릇 주문이요.”

 

***

 

이 순간만큼을 기다려왔다. 전영중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성준수는 장비들을 착용했다. 바디캠과 녹음기를 차고 놈들의 거처에 둘 도청기도 준비했다.

 

“준비됐어.”

 

“조금이라도 위험한 낌새가 보이면 튀는 거야, 준수야. 제발 그놈의 영웅병 도져서 무모한 짓 하다가 날려 먹지 말고.”

 

“아, 알겠다고.”

 

“나 진짜 진지해. 이번 건은 실패해도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니까 여태까지 우리 준수 실적처럼 허탕치면,”

 

“야, 영중아.”

 

바디캠의 작동을 다시 확인하던 준수가 어쩐 일인지 씩 웃었다. 평소였다면 또 시끄럽게 군다고 둘이 티격태격했을 텐데, 지금은 그저 녀석이 걱정돼서 전전긍긍하는 걸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서방님 다녀온다.”

 

한 박자 늦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는 영중을 뒤로하고 국밥을 든 성준수가 가게를 나섰다. 얼굴이 시뻘개진 전영중은 그놈의 게이 부부 컨셉을 고수할 때부터 알아봤다고 중얼거리며 팔로 뺨을 벅벅 문질렀다. 성준수진심개최악인간.

 

“주고 가쇼.”

 

“어?”

 

문제는 돌입도 하기 전에 입구 컷 당하게 생겼다. 건물의 1층에서 떡하니 손만 내민 똘마니 하나의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던 영중이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여기서 이대로 돌아갈 순 없었다. 하지만 마땅한 핑곗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안되는데요.”

 

성준수, 또 일 벌였다. 전영중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 성준수 제발!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성준수는 제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꺼내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빛을 받은 통이 번쩍거렸다.

 

“금가루를 뿌려드려야 해서요.”

 

***

 

성준수가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현관에서부터 발을 동동 구르고 기다리고 있던 전영중이 와락 안겼다. 새끼, 쫄기는. 준수가 영중의 등을 토닥였다,

 

“그래서, 알아본 얼굴 있어?”

 

영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이야기니만큼 목소리가 자연스레 낮아졌다.

 

“...상당히 위험한 놈들이야.”

 

“어딘데?”

 

“...앙큼 탕후루파.”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미쳤나, 이름 뭐냐?”

 

“나한테 물어보지 마. 지들끼린 다른 이름으로 부르던데, 아무튼 재석이가 지었어.”

 

앙큼 탕후루파. 줄여서 앙탕파. 서울 강남 일대의 마약 망을 관리하고 있으며, 마약 밀수가 주업인 부산 갈매기 파의 가장 큰손 고객이시다. 참고로 갈매기 파라는 이름은 성준수가 점심을 들고 바닷가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갈매기에게 강탈당한 날 공태성이 지었다. 갈매기 파라는 이름도 충분히 열 받았는데, 더한 강자가 여기 숨어있었다. 원래는 앙큼상큼 탕후루파라고 지으려고 했단 걸 듣고는 혀를 내둘렀다.

 

“...내가 비싼 돈 주고 재물밥을 시킨 이유는,”

 

혼란한 가운데에 슬쩍 두고 온 도청기를 통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에 생기는 큰 건수 알지? 그거 치지직...에서 하기로 해서 그래.”

 

전영중과 성준수가 멍한 눈으로 소리가 나오던 기계를 바라봤다. 다 나왔는데, 지금 가장 중요한 지명만 쏙 빼먹었다는 게 말이 되나?! 안타깝게도 이어지는 대화에서 지명은 그 이상 언급이 되지 않았다. 날짜와 시간과 규모와 인력과 거래량과 아무튼 중요한 정보는 다 줬으면서, 그게 대체 어디냔 말인가.

곧바로 원중에 연락한 그들은 거래 장소로 추측되는 곳으로 배치 지시를 받았다. 이 건만 잘해내면 승진에 뭐에, 다 따놓은 당상이었는데도 성준수는 뭔가 계속 찜찜했다. 작전 당일까지 그랬다.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여보.”

 

성준수의 뒤에서 전영중이 웅얼대며 끌어안았다. 같은 침대에서 눈 뜬 뒤였다. 둘은 홀딱 벗은 채 같은 이불을 나눠 덮고 있는 채였고.

 

“야, 영중아,”

 

“웅?”

 

“우리 왜 이러고 있냐?”

 

설정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데도 둘은 착실히, 자발적으로 게이 부부의 역할을 해냈다. 아무도 거기까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무도. 준수의 뒤에서 준수야그게무슨소리야어제네가먼저나한테서방님이라며나만또진심인거지너는아무생각도없는데또나만... 같은 소리가 앵알앵알 들려오자 성준수는 그저 한숨을 쉬고는 전영중의 뒷목을 붙잡아 내려 제 입으로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걸 보아하니 고장 난 모양이었지만. 이제 좀 낫다고 생각하며 성준수는 전영중의 품에 늘어지게 기댔다.

 

“재물밥... 재물밥...”

 

치지직 소리는 뭐였을까. 해가 저물고 울긋불긋한 채로 침대에서 내려온 두 사람은 나갈 채비를 했다. 원중에서는 가장 유력한 장소로 앙탕파의 이전 거래지를 골랐다. 하지만 성준수는 직감적으로 그게 틀렸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준수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이씨, 이거 뭔가 아닌 것 같아.”

 

“또 그러다 작전 망칠 생각이야? 준수 네가 삼천포로 빠지는 건 내 역할이라며.”

 

“야, 그거다!”

 

흥분한 성준수가 전영중이 두른 이불을 잡았다. 난데없이 멱살이 잡힌 영중이 땡그란 눈으로 쳐다보자 이해하지 못했냐는 투로 그걸 짤짤 흔들었다. 영중만 억울하게 멱살잡이를 당했다.

 

“무슨 소리야, 준수야. 그리고 이거 좀,”

 

“재물밥... 제물포!”

 

“...?”

 

눈이 반짝거리는 준수와 정반대로 전영중의 눈은 안광을 잃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준수야... 지금 아재 개그 하는 거지?”

 

안타깝게도 성준수는 진심이었다.

 

***

 

전영중과 성준수를 실은 차가 제물포로 달려갔다. 이번에도 차 타고 광안리까지 달려갈 거냐는 영중의 시비로 준수는 또 조수석에 앉았다.

 

“준수 너는 그럼 상부에서 왜 제물포로 갔냐고 하면 그게요, 쟤네가 재물밥을 시켜서요 라고 할 거야?”

 

“아 그럼 뭐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그게 문제지! 변명도 못 하겠잖아!”

 

“우리가 가서 성공하기만 하면 변명이 아니게 돼.”

 

“성공하‘면’이잖아!”

 

결국 영중의 입을 또 다물게 하려던 준수는 이러려고 나 만나? 라는 영중의 고함을 들은 후에 의자에 파묻혔다.

 

“야, 야. 너만 뽕쟁이 새끼들 잡고 싶은 거 아니거든?”

 

“나 지금 진짜 차 돌리고 싶으니까 가만있어 봐, 준수야.”

 

“...이러니까 우리 신입 때 생각난다.”

 

“추억팔이 해도 소용없어.”

 

그래도 어떻게 꿋꿋하게 두 사람은 저들만의 목적지로 향했다. 어딨냐, 왜 안 오냐는 빡친 지국민의 무전을 bgm 삼아. 미안하다, 국민아. 영중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게 다 성준수의 극악무도한 미인계 때문이었다. 정작 성준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제물포에 도착한 둘은 원만한(고성의) 합의(우기기)를 통해 가까운 항구로 향하기로 했다. 부산에서 물건이 올라오는데 굳이 제물포를 선택한 이유를 따지자면 배로 들여오기 때문일 것이라는 합리적(심증뿐인) 의심 때문이었다. 차에서 내린 둘은 옷매무새를 고쳐매고 총을 들고는 조심스레 컨테이너 벽에 등을 붙였다. 영중은 무전기를 들고는 처음이자 마지막 무전을 쳤다.

 

“야, 국민아.”

 

“전영중, 너 지금 어디야?!”

 

“우리 제물포다.”

 

“성준수랑 디스코팡팡이라도 타러 갔어?!”

 

“그게 아니라, 재물밥이... 아니, 아무튼 여기 같아서 왔어. 지원해줄 수 있으면 부탁한다.”

 

전영중이 무전을 치는 동안 성준수 역시 휴대폰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준수 너 연락 안 된다고 원중 아한테 연락 왔다 뭔일 있나?]

 

[햄 지금 어디예요? 저희는 갈매기 잡으러 부산항 옴]

 

[전하 대체 또 뭔 사고를 치려는 거소서]

 

슥슥 메시지를 넘기던 그는 단체 채팅방에 [제물포]라는 한 단어만 남겼다. 연락을 다 취한 영중과 준수는 눈짓을 주고받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야, 야...!”

 

얼마나 지났을까. 무언가 발견한 준수가 숨을 죽이고 영중을 불렀다.

 

“저 새끼 저거 김 사장...!”

 

영중도 준수의 머리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정말 김 사장이 있었다.

 

“저 뒤에 있는 놈, 앙탕파 똘마니야.”

 

“아이씨, 미친. 갈매기 놈도 있네.”

 

빙고. 전영중이 급하게 무전을 쳤고, 성준수는 주변 인력 지원을 요청했다. 이제 그들이 올 때까지 감시만 하고 있으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겠지만 당연히 그런 행운은 없었다. 그들이 항구 쪽으로 몸을 틀었기 때문이다. 비록 가게 한 채는 그 자리에서 사버렸다지만 배 한 척을 그 자리에서 살 순 없었다. 둘 다 배를 운전할 줄도 몰랐다. 이대로 그들이 배에 오르기 전에 막아야 했다.

 

“저거 어떻게 막지? 시간이 너무 부족한데.”

 

“잠깐만 있어 봐.”

 

영중의 불안한 눈빛이 흔들렸다. 성준수는 이럴 때 꼭 뭔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한 건 쳤다.

 

“저 혹시,”

 

아직 인원이 다 모인 건 아닌지 어수선한 가운데서 성준수가 나섰다.

 

“재물밥 시키신 분?”

 

남자들이 당황한 듯 시선을 교환했다. 시킨... 사람...? 같은 몇 마디가 웅성대듯 스쳐 갔으나 누군가가 콰앙, 하고 각목으로 컨테이너를 쳐서 잠잠해졌다.

 

“넌 뭔데?”

 

“경찰, X끼야.”

 

성준수 진짜 미쳤어?!?!? 전영중이 소리 없는 고함을 쳤다. 우습게도 성준수가 그렇게 당당하게 나가자 그들도 긴가민가 하는 듯 했다.

 

“뭔, 무슨 짭새가 이래?”

 

“야, 야, 다 필요 없고, 김 사장.”

 

김 사장이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성준수가 다가가며 제 손목의 시계를 풀었다. 컨테이너 뒤에서 보던 전영중은 여기서도 폼 잡는다고 중얼거렸지만,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솔직히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할 말이 좀 남지 않았나?”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미친 차 추격전. 전국적인 망신과 경찰 무능론. 직장의 모가지 여부와 이 모든 일의 원흉. 성준수는 이번에야말로 잡히면 뒤진다는 말을 증명하고자 했다.

 

“...누구...?”

 

하지만 이런 대답만큼은 예상하지 못했다.

 

“...”

 

“...”

 

정적이 흘렀다. 성준수의 안 그래도 날카로운 얼굴은 점점 살벌하게 변해갔다. 어느샌가 조직원들은 성준수와 김 사장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이고, 사장님! 농담이죠! 제가 사장님을 설마 기억 못 할 리가,”

 

“내가 방금 내 입으로 짭새라고 했잖아.”

 

“아.”

 

심지어 김 사장이 분위기를 위기로 조져놓았다.

 

“형님, 근데 저놈이 진짜 짭새면 우리가 쳐야...”

 

“설마 저게 진짜겠,”

 

“아니, 진짜라니까 앙큼 탕후루파 놈들아!”

 

앙탕파 일원들이 움찔했다.

 

“...인데요.”

 

“뭐?”

 

“칠갑파...인데요.”

 

앙탕파의 본명이라는 듯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성준수가 윽박질렀다.

 

“아무튼 앙탕, 큼, 파라는 이름을 쓰는 걸 보면 짭새는 맞나보다.”

 

“아, 근데,”

 

갑자기 뜸을 들이는 성준수에게 이목이 쏠렸다.

 

“너네, 갈매기가 찌른거다?”

 

“뭐...?”

 

“야, 잡아!”

 

순식간에 항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늦게 합류한 양쪽 조직의 사람들까지 더해지자 여러 사람이 뒤엉켜 정신이 없었다. 원래라면 터무니없는 쪽수였겠지만 두 조직끼리 머리채를 잡느라 이쪽은 번외였다. 그 와중에 성준수는 지독하게도 김 사장 한 놈만 조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때문인지 뒤에서 날아드는 각목을 눈치챘을 땐 피하기에 너무 늦었다. 그때 누군가가 한 손으로 턱 막아내었다. 전영중이었다.

 

“준수야, 머리 조심해야지.”

 

“니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으랬잖,”

 

“그렇게 준수 머리 날아가는 꼴 보라고? 싸움도 못 하면서 허세는.”

 

과연 혼자서 맨손으로 깡패들 싸움판에 낀 걸 두고 싸움을 못 한다고 불러도 되는진 불분명했으나 아무튼 성준수와 등을 맞댄 전영중은 그렇게 말했다. 준수가 김 사장 하나만 줘패기 위해 앞으로 전진하며 인간 방해물들을 밀어내는 동안 영중은 등 뒤를 막아주었다. 그 방해물들을 치워주기도 했고. 꼭 몇 년 전, 같이 현장을 뛰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낸 영중과 주먹을 날리던 준수의 시선이 묘하게 겹쳤다. 컨테이너의 구석으로 슬쩍 숨은 그들은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거칠게 입을 맞춰왔다.

 

“일에 집중 안 하냐, 영중아?”

 

“누가, 할, 소릴...”

 

다시 컨테이너 뒤에서 나온 둘은 앞에 있는 이들에게 발과 주먹을 날렸다. 주먹을 맞은 놈들은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 난장판 속에서 앞으로 척척 방해꾼을 치우며 걸어 나간(쥐어팬) 그들은 마침내 김 사장 앞에 섰다. 성준수가 멱살을 잡았고, 전영중이 그 뒤에 버티고 섰다.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다.

 

“아, 한 번만!!”

 

“그러게 누가 튀래?!”

 

“니가 뭔데 성준수한테 앙탈이야?!”

 

왁왁거리며 세 사람이 소리소리를 지르고 성준수가 김 사장에게 주먹을 한 방 먹인 직후, 갑자기 빛이 번쩍 들어왔다. 너무 밝아 눈을 뜨기도 힘든 빛에 성준수와 전영중이 제 눈을 가리자 그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왔다.

 

“아, 아, 거기 무기들 버리고 투항,”

 

“니들은 전원 체포되었다!”

 

“조재석, 안 비켜?!”

 

원중 경찰서 놈들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아직 제게 닿지 않았음을 확인한 성준수는 그새 김 사장을 한 대 더 쳤다. 전영중이 슬쩍 몸으로 가려주자 그 뒤에 숨어서 또 쳤다.

 

“영중이도 준수도 수고 많았어.”

 

들려오는 이휘성의 인사소리에 두 사람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럼 이제 가봐도 돼?”

 

“겠냐고.”

 

당연하지만 아직 소탕이 남았다. 영중과 준수가 한숨을 쉬는 동안 지국민의 카운트에 맞춰 원중과 지원팀이 돌격했다.

 

“그래, 잡는다, 잡아.”

 

“휴가 주기다?”

 

그리고 두 사람도 합류했다. 결국 이날 수도권과 부산에서 동시에 일어난 검거는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고, 큰 공을 세운 성준수의 그, 음, 저기해서,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은 인터뷰도 실렸다.

 

“준수야, 형편없는 실력으로 형사 같은 건 때려치고 대박 창업 청년 사장님 하는 건 어때?”

 

“이상하다, 왜 속이 안 긁히지? 왜 달달 하지?”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포상금이니 보너스니 하고 받은 돈보다 재물밥집의 장사로 번 돈이 비교도 안 되게 웃돌았다.

 

“신혼 자금 마련은 문제없겠네.”

 

“성준수...”

 

영중이 감동받은 목소리로 울먹였다.

 

***

 

성준수는 승진을 했다. 원래는 서울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그는 당분간 지상 경찰서에 남기로 해서 제일 큰 공을 세운 걸 인정해줄 겸 생긴 조치였다. 그 과정에서 전영중과 통화로 죽네사네 깨지네헤어지네 하고 난리가 난 건 그들만 아는 비밀이었다. 연인관계가 되기로 한 그들은 철저하게 비밀 연애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후엔 남부럽지 않은 장거리 연애를 실천했다. 그리고 마침내,

 

“준수야, 선크림은 챙겼어?”

 

“수영복, 비치타올, 선글라스, 스노클링 장비, 피자 모양 튜브까지 챙겼어.”

 

두 사람은 커플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다정하게 손을 잡은 채 공항에 캐리어를 끌고 들어갔다. 모처럼 얻은 휴가였다. 근무지가 다른 것의 장점 중 하나는 휴가를 동시에 써도 아무도 수상쩍게 여기지도, 눈치를 주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이지만 두 사람은 몰디브에 가기로 했다. 최고의 휴양지. 지상 낙원. 드디어,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을 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햄...?”

 

“어! 영중이 형! 그리고... 준수 형....?”

 

그 누구보다 연인끼리 놀러가는 티를 팍팍 내며 느긋하게 공항에서 데이트를 하던 그들의 꿈은 단 5분 만에 물거품이 되었다. 니들이 왜 여기서 나와...? 그건 저희가 할 말인데요... 교차하는 흔들리는 시선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아, 망했다.

 

“여보세요? 영중이 형 그렇게 성 경위님이랑 안 사귄다더니 지금 공항에서 커플룩 입고 손잡고 있는 거 현장 검거했어요.”

 

“해앰... 지수 보러 가는 거라고 했잖아요...”

 

비밀 연애고 뭐고 다 허사였다. 차라리 비밀 연애만 들켰으면 좋았을 것을, 성준수는 지상 경찰서에 해외에 유학 간 동생을 보러 간다는 거짓말까지 쳐둔 상태였다.

 

“아니, 니들이 왜 여기서 나오는데?!”

 

업무차. 그놈의 업무차!!! 또 뭔 일 때문에 업무차 공항에 오셨단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지는,

 

“몰디브요!”

 

“이 씨X!!! 되는 게 없어!!!”

 

고되고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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